반(半)개혁주의_이윤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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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6>

반(半)개혁주의

이윤호 집사_선교와 비평 발행인

6문>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
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또한 자신의 형상, 곧 참된 의와 거
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고, 그
리하여 그 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7문> 그렇다면 이렇게 타락한 사람의 본성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답>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습니
다. 그때 사람의 본성이 심히 부패하여 우리는 모두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
합니다.

8문> 그렇다면 우리는 그토록 부패하여, 선은 조금도 행할 수 없으며 온갖 악
만 행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참으로 그렇습
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 7, 8문은 
비참한 인간본성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
한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우리 교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케 하고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면(6문) 비참한 인간의 본성은 어디
에서 비롯되었는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것이 ‘원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7문). 기
독교 초기 역사에 등장한 인물 중에서 ‘원죄’를 부정함으로써 교회에 큰 파
장을 일으켰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펠라기우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
했듯이 그도 역시 연약하기 짝이 없는 현실교 회를 바라보며 지금보다 더 나
은 교회의 모습을 원했습니다. 펠라기우스는 이를 위해서 인간의 부단한 노력
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장래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이 얼마나 
스스로 책임성 있게 노력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 과대 평가해

그렇지만 그의 생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바로 원죄입니다. 원죄
라고 하는 인간의 비참한 근원적 본성이 있는 한 사람의 노력이 자칫 무의미
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간에게 운명적으로 지워진 원죄만 없다
면 교회의 미래는 우리가 노력하
기 나름일 것입니다. 결국 펠라기우스는 아담
의 타락에서 기인한 원죄를 부정함으로써 인간 노력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사람이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
은 성도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열
심히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펠라기우스를 따
르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도덕적이었을 수 있으며, 그들의 신앙 생활에 기
쁨이 넘쳐났을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라기우스의 사상은 418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와 431년 에
베소 종교회의를 통해 이단으로 정죄 받기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펠라기우스
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인간 노력의 가능성으로 대신했기 때문
입니다.
펠라기우스는 비록 이단으로 정죄 받았지만 그의 가르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
다. 많은 사람들이 원죄에 대한 펠라기우스의 이성적 판단을 떨쳐버릴 수 없
었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양보하여 펠라기우스의 사상에 대한 타협이 일어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함을 알면서도 펠라기우스의 인간 본
성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태도였습니다. 역사는 
그들의 사상을 반(半)펠라기우스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펠라기우스주의와 같은 유의 인본주의적 생각을 철
저히 배격해야 함을 교회에 당부하고 있습니다. 원죄로 인한 인간의 태생적
인 비참함(7문)과 선에 대한 완전 무능함(8문)을 철저히 깨달을 때에야 비로
소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백성을 향한 경륜에 참여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
니다. 
오늘날 비록 펠라기우스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
히 교회 가운데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입으로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무엇이든 제대로 
된 전략을 가지고 스스로 최선을 다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는 마땅히 뒤따라 
올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사람을 의존하는 교회들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함을 강조하면서도 인본주의적 노력과 그 결과에 열중하
여 인간 본성의 전적 부패한 상태를 간과한다면 우리의 모습 속에 반(半)펠라
기우스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거스틴은 왜 그
토록 집
요하게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 이를 놓친다면 우리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가리켜 반(半)개혁주
의 교회라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