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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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목사(소식교회)

제14문 
문 :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 
성경 : 롬 7:7-25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죄의식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의
식이란, 사람에게 괴로운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히 번민하여 
죽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안에 죄가 있으면, 죄의식이 있어야지 죄
를 짓고도 죄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더욱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죄
인중에도 뻔뻔스러운 죄인이 될 것입니다. 죄인이라면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
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건져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고 그
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에 감사할 것입니다(롬 7:25,25).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감사하는 생활이 신앙 생활의 토대입니다.

율법은 죄의식 드러내

특히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곧 율법이 탐
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7
절).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
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
이니라”(13절) 말씀도 그런 뜻입니다.

1) 보편적으로도 죄를 말하려면 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표준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율법이 없다면 죄도 없을 것
입니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 없다면 범법 행위도 있을 수 없
고 감옥도 없을 것입니다. 죄를 이야기 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인정해
야 하고 하나님이나 그의 법을 부인하고서 죄를 논한다는 것은 헛된 일일 뿐
입니다.

2) 사람은 원래 도덕적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지어져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나
님의 뜻을 알고 행동하였습니다.
인생이 죄를 지어 타락한 후에도 도덕성이 전혀 말살된 것은 아니어서 율법
의 일이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롬 2:14,15).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규칙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율법의 해석에서 사용했고 
모세법 전체를 십계명에 넣어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롬 2:18,19).

3)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들의 죄의식을 일깨워 하나님의 자비
하심
을 의지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
나님의 자비하심을 얻어 새로운 마음을 얻은 자는 그 표준대로 살도록 하셨습
니다. 그리고 십계명은 시대의 실정에 맞춰 변경되는 실정법에서 훨씬 뛰어
나 어디서나 어느때나 사람이 알고 행해야 할 바 하나님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친히 목소리를 발하여 들려 주셨
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없이 하지 않는 한 그 법은 영원한 법이
다”는 생각이 개혁자들의 소신이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도덕법이 타락
한 사람의 마음속에 히미하게 비취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뚜렷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선포되었고 다른 나라 백성들도 이스라엘을 통하여 명백한 하나
님의 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표준 제시

4) 신약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칠 때는 율법의 골격, 
곧 십계명을 들어 가르칩니다. 
로마서 13:8절 이하에도 사랑을 가르칠 때 십계명과 관련시켜 설명합니다. 
또 디모데전서 1:9절 이하에 여러 죄인들을 열거할 때 십계명에 비춰서 저촉
되는 자들을 
말했습니다.
5) 주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라고 하셔서 구약의 율법이 하나님의 뜻의 표현인을 인정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분명한 해설과 지키도록 하는 교훈에 힘쓰셨습
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혹은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죄를 깨닫
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는 큰 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도 인정치 않고 하나님의 법도 인정
치 않음은 죄의 개념이 매우 불분명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다면 
죄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① 율법을 통해서만이 ② 성
령으로만이 회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의해서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자기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됩니다.

1) 이로 보아 다윗의 죄의 인식을 매우 정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
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
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하였습
니다(시 51:1,2).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전적으로 주의 자비로 용
서하시고 씻어 주시기를 구하였는데 그 큰 이유는 자기가 오직 하나님께만 범
죄하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
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
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4절). 다윗이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범죄한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요, 그것이 사람에게 범한 죄에 그치
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범한 죄임을 통절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 또 한 가지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2)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부족한 
것도 죄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빠뜨리는 일도 죄가 됩니
다. 마 25:31절 이하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읽을 때 놀라웁고 당황하게까지 
하는 점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
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5절)는 말씀입니다. 일부
러 반역하는 뜻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을지라도 태만하여 하나님의 뜻
을 즐겨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곳에 반듯이 하
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행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자들은 ‘믿음의 토
대 위에 율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신앙이 없이는 율법을 들을 수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율법은 동시에 선포되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먼저 은혜가 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이 필연
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생활이 필연적입니
다. 그래서 개혁교회 신앙교육은 사도신경 해설 후에 십계명을 해석하여 가르
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