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는 하지 마세요”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교회가 부딪치는 안팎의 고난은 교회를 연단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
세간에서 “범생이”로 통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 저는 꿈 많은 사춘기나 대학시절에도 그럴듯한 에피소드가 없습니다.
그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기도 빠듯하기도 했지만 의대공부 따라잡기에 바빠서 옆을 쳐다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기억은 교회, 학교 그리고 유일한 취미였던 테니스에 대한 기억이 다입니다.
덕분에 높은 테니스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저와 같이 치는 것을 좋아하고 또 간혹 한수 가르쳐주면 그렇게 고마워하곤 했습니다.
장년이 되어 안정된 직장과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무렵, 목사님들이 주축이 된 테니스 동호회에서 운동을 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는 사회에서 테니스가 인기였던 시절이라 많은 목사님들이 테니스를 좋아하며 또 열심을 내는 분들도 많았고 우리 동호회에도 새로 시작하고 열성적인 한 젊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님들과 운동할 때는 운동경륜도 쌓인 시기로 이기는 테니스가 아니라 즐기는 테니스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새로 시작하는 목사님을 위한답시고 한 수 가르쳐주는 마음으로 훈수를 하곤 했나봅니다.
어느 날 저를 잘 모르는 그 젊은 목사님과 같은 편을 하고 게임에 진 다음에 분석해 주는 저에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위력적인 볼도 못 치면서 자기가 고수인줄 아시나 봐요!”
그 순간 아차 쥐구멍이 어딘지 찾아보고 싶을 만큼 참으로 무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취미로 운동을 하면서도 그 종목을 더 잘하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냥 운동하는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더 잘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만일 누가 평을 하거나 훈수 같은 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큰 실례가 되며 자존심을 크게 다치게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에서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기로 작정한 이후에는 믿음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성화의 과정을 차분차분 걸어가며 좋은 목회자의 인도에 따라 믿음의 선배들의 조언에도 귀 기울이고 성도들과 부대끼며 열심히 믿음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교회에 다니는 것을 격조 높은 문화 활동이나 고상한 취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기가 높은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종교인이라고 생각하며 믿음의 성장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배에서 수준이 높은 성경해석이나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 설교에는 만족을 얻지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 선포일 경우는 마음이 덤덤해지며 설교자가 남에게 훈수할 만큼 제대로 살고 있는지 따져보는 마음을 갖게 마련입니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성도들과 교회에 대하여 전신갑주, 흉배, 검 등을 표현하며 완전무장하고 깨어 있을 것을 부탁하는 바울 사도의 말씀(엡 6:11-18)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땅을 주시며 그곳에서 복 속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주의 명령을 마음과 뜻에서만 아니라 손목과 미간 심지어 문설주와 바깥문에 말씀을 기록하여 두고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명령하시는 하나님 말씀(신 11:18-20)을 보면 믿음생활은 전쟁행위처럼 느껴집니다.
그만큼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어지고 교회가 사회의 친목단체나 문화 활동 단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교회는 안팎으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오히려 우리가 잘못된 곳에서 돌아서고 또 교회가 바로 서는 좋은 연단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