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_ 전정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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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만남

 

< 전정식 박사, 샘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

 

 

“부자 관계 자체가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근거”

 

 

이제 2012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고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좋은 기분으로 아침에 신생아실 회진을 돌았습니다.

 

신생아실에서는 마침 면회 시간이 되어 막 태어난 아기의 가족들이 면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온 식구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기를 먼저 보려고 머리를 들이대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구동성 “예쁘다!”라고 소리칩니다.

 

밝은 기분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실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갓난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 “예쁘다!”라고 소리칠까? 30년 넘게 소아과 의사로 아기들을 보게되지만 사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예쁘다”라는 표현이 어색합니다.

 

아기들이 귀엽고 예쁜 것은 사실이지만 신생아 시기의 아기의 외모를 보면, 이목구비와 신체의 구조가 어른과 다른 균형을 보여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처음 만나보는 가족들의 기쁨과 진지함을 보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는 자체가 경망스럽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첫 손자를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기분으로 “참 예쁘다!”라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이는 대상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이나 만족을 줄 때나, 또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을 때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갓 태어난 아기는 균형과 조화 면에서 “예쁘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일이나 마음씨를 보여줄 시간조차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쁘다”라는 말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오는 아기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기는 출생이전 잉태되었을 때부터 부모에게 기다려지고 설레임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기의 출생은 아기와 부모 모두에게 복된 시간이 되며 또 엄마의 산고는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아기를 처음 만날 때 느끼는 아름다움은 혈연 관계에서 시작되어 가슴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고 긴 성화의 과정에 있는 나는 신앙생활에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교리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고 가르치시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습관처럼 기도 속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직 내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하나님이 늘 못난 나를 사랑하실까?” 하고 자신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갓난아기가 혈육이라는 관계 하나만 가지고도 예쁘다는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 나도 믿는다는 조건 하나만 가지고도 약속하신 대로 아들도 되고 또 아버지의 사랑과 복주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교회에서 사람의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웬만한 믿음의 경지에 가지 않는 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생아실에서 부모와 아기의 첫 만남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아기가 커서 부모의 사랑을 가슴으로 알게 되면 아기도 부모를 기쁘게 하고 또 부모를 즐겁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오늘따라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시는 관념 속의 초월자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새해 첫 달, 오늘 태어난 그 아기는 저에게 참으로 고맙고 귀한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그 아기가 커서 부모와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과 기쁨을 가슴으로 알게 된 후에는, 부모와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올 한해는 아버지를 즐거워하며 살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올 한해동안 아버지께 기쁨이 될 것입니다.

 

* 전정식 박사는 남포교회 장로이며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및 샘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가톨릭의대(의학박사)와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M.Div)에서 수학했으며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교환교수, 가톨릭의대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