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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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지루한 장마 속에서도 황홀한 석양빛은 다름다워”

 

 

한 낮인데도 장맛비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사방은 캄캄하고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요란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잠시 가늘어지는지라 창문을 열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니 여느 때와는 달리 온통 흙탕물입니다.

 

남편은 장맛비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의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비설거지를 한다고 했지만 여러 날 계속되는 비로 인하여 비가 새는 곳은 없나 하고 교회 주변을 자주 살피면서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음악을 들으며 진한 커피 향과 함께 낭만을 느꼈던 젊은 날들의 아련한 추억보다는 교회의 성도들과 그들의 산업인 바다와 농작물이 걱정됩니다. 지루하게 비 오는 날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지만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비는 특별히 생각나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날은 이곳 채석포에 오기 전 십 수 년전에 남편의 친구 목사님 부부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여행을 많이 하신 분도 아니고, 운전도 가까운 거리만 오고 가는 정도였습니다. 주일 밤 예배를 마치고 같이 하는 여행을 생각하며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는데 여행을 가기로 한 새벽부터 정말 많은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이왕 꾸린 짐을 풀지 말고 그냥 계획된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자동차를 탔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와이퍼도 잘 돌아가지 않아 많은 비가 걱정이 되었지만 모처럼의 휴가라 태연한 척 했습니다. 친구 목사님 집으로 가서 목사님 부부를 차에 태우고 목적지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댁에 도착할 때쯤 해서 비는 장대비로 변했습니다. 험한 날씨와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모처럼의 휴가를 같이 하기로 한 목사님 부부가 비가 많이 오니 자기들은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할 것 같아 걱정을 했는데 아뿔싸! 우리들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그분들은 이불과 베게까지 준비한 보따리를 들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레저 산업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고 민박집에서 방 하나를 빌려 두 부부가 사용하면서도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추암 해수욕장에 갔을 때입니다. 새해 달력이나 뉴스 시간에 나오는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사진 기사들이 큰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가지고 이곳저곳에서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장소에는 잠을 아끼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난 남편이 떡 버티고 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작은 카메라는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너무 초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남편을 놀리는 우리들의 놀림에도 관여하지 않고 남편은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 때 촬영한 일출사진은 작품이 되어 거실에 걸려 있어 남편의 자랑이 되기도 하고 그 날의 추억들을 기억나게 하며 가끔씩 미소짓게 합니다.

 

모든 것들이 많이 부족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마음 고생하던 시기에 목사님 부부와 며칠 간의 여행으로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간직되었고 또 다른 몇 번의 함께 한 여행은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오니 현관 앞에 박스 하나가 있었습니다. 박스를 펼쳐보니 신앙서적과 수필집 여러 권이었습니다. 장맛비가 계속되는 이러한 날에는 추억의 시간들을 회상해 보기도 하지만 습도가 가득한 실내에서 짜증과 무료함으로 무기력하게 있던 중에 꼭 읽고 싶었었던 책들을 보고 너무 기뻤습니다. 책을 보내준 사람을 보니 내 친구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장로님이 되어 아들 목사를 생각하며 친구 남편의 목사님과 친구인 사모가 생각날 때마다 많은 책들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책을 보낸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책을 다 읽을 때쯤 해서 알게 하는 겸손함까지 있습니다.

 

요즈음과 같이 긴 장마철이거나 겨울에 많은 눈으로 사방이 갇혀 있을 때 변화 없는 일상생활에서 가끔씩 나의 무기력함으로 인하여 매너리즘에 빠져들며 내 영혼의 고갈됨과 갈급함이 나를 짓누르며 실패자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 때 친구가 보내준 책들을 읽었습니다.

 

많은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분들에게만 주셨다고 생각했던 그 많은 것들을 이미 나는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성공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승리의 삶이 진정한 사명의 길임을 깨닫게 하셨음에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목회자로 섬기는 나의 입장에서는 같이 목회하는 이웃 목사님들이 건강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모들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같은 아픔일 수는 없지만 큰 혼란에 빠져들고는 합니다.

 

늦은 석양에 장대비가 계속 쏟아진 듯하더니 갑자기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서쪽 하늘 한 곳이 온통 불타는 듯 불덩이였습니다. 그때 외출 중이던 남편도 그 놀라운 장면을 차 안에서 목격하고 급히 차를 멈추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짧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장마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내 영혼의 기름이 바닥나서 위급할 때 친구를 통해서 보내준 책들을 비 오는 날 읽으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확신하면서 더 큰사랑을 구할 때마다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체험하고 기쁨을 회복한 순간들 같았습니다.

 

장맛비가 그치고 뜨거운 여름 햇살로 온 시야가 밝고 환할 때가 되면 건강을 잃었던 동역자의 건강이 회복되고 연약한 성도들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기쁜 소식들을 들을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