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가슴에 묻고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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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 김영자 사모, 채석포교회 >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 주신 신앙의 꽃 활짝 피우고자”

 

 

어느 해보다도 눈이 많이 내리고 매서운 추위로 움추렸던 겨울이지만 한낮에 비치는 햇살로 응달과 골짜기의 눈이 차츰 녹아 내리고 지붕의 고드름 녹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짙은 해무 때문에 앞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 중에도 먼 곳의 앙상한 나뭇가지의 끝자락이 빨갛게 물이 올라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보니 우울했던 겨울도 지나가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사물이 제 모습으로 보이듯이 그렇게 이 고장에도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 겨울에는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하신 성도들을 부축하여 자동차에 태워 교회에 모셔와 자리에 앉히시면 조금 나이 젊은 성도들은 어른들께 얇은 이불로 무릎과 허리를 감싸고 의자에 기대게 해 줍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서로에게 감사와 위로를 받으며 예배를 드립니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은 성도는 자기 자신이 이렇게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또 곁에서 지켜보는 성도들은 “그만해도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며 서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오르막길이 있는 교회 언덕길의 눈을 치우다가 남편은 며칠씩 감기로 인하여 자리에 눕기도 하지만 소나무가 길게 뻗어 응달진 곳이 얼기 전에 눈을 쓸어야 한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눈과 싸울 때도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몹시 추웠던 만큼 나에게도 춥고 아픈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했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주지 못한 사랑 때문에 회한과 통곡, 그리고 많은 눈물을 흘린 겨울이었습니다. 청개구리의 슬픔에 공감하고, 내 이성과 지식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도 맛보았고, 어머니의 집착과 간섭으로 나를 아프게 했던 것도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년 추석 다음 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92세를 사셨던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시던 날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셨고, 노환으로 인하여 몸이 조금 불편 하셨지만 끈임 없는 기도와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맞이했습니다. 주위 분들은 이런 어머니를 모두 존경하고 본받고자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교회 중심적으로 살았던 어머니에 대해서 유복자로 태어난 나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딸에 대한 사랑은 율법적으로 무척 엄하셨고, 애착과 집착이 짐으로 생각되어 나는 항상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순간 모든 것들이 딸을 향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내 영혼은 하나님 곁에 있을 테니 남은 것은 죽은 육신 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아픔이었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노회 목사님들께서 많은 시간 자리를 지켜 주시고 멀리 있는 동문 목사님들께서 오셨기에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충남대 의대에서 화환을 보낸 것을 보고 문상객으로 오신 분들은 의아해했지만 어머니의 시신 기증 사실을 아시고 숙연해 하면서도 귀한 일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발인식 예배가 끝나고 곧 바로 병원차가 와서 어머니를 실고 갔는데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으며, 장례를 치른 후에도 오랫동안 섭섭함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재조명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다 하지 못한 사랑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밥상을 차리다가도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반찬과 음식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릴 때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불렀던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나 “내 영혼이 은총 입어”는 어머니의 노래이면서 나의 노래였던 것도 슬펐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후 시신기증으로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갈 곳이 없고, 어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로 나눌 사람 하나 없이 내 기억 속에서만이 어머니와 같이 있을 뿐입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 없어지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어머니가 살다간 이 세상에서의 자취는 노을처럼 내게 남겨져 있어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더욱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일생은 청상으로 많이 외롭고 힘들게 사셨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세상을 사셨고 예수님을 신랑삼아 사셨기에 많이 행복해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내게 말 할 수 있으시다면 지금 이렇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일으켜 세우셨듯이 자식하고 엄마는 보이지 않는 탯줄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겠지만 잊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노인들이 혼자 있는 것을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외로움이 무섭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싶어도 연약한 몸이 되면 할 수 없으니 두발로 걸을 수 있고 건강할 때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외로움도 달래고 예배도 드리고, 바깥 세상을 구경하라고 합니다.

 

거실에는 나의 게으름과 거름 부족으로 늘어져 있던 행운목에서 꽃대 두 대가 올라옵니다. 이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어머니만큼 기도하며, 어머니만큼 성경 말씀 읽는 것이 내 기도의 제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몸이 불편하고 노쇠하여 연약한 성도들에게 외롭지 않게 섬김으로 어머니가 나에게 남겨 주신 신앙의 꽃을 활짝 피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