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_추둘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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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추둘란 집사, 수필가, 홍동밀알교회 >

 

 

“하나님과 함께한 지난 10년이야 말로 천국이라 말할 수 있어”

 

하나님이 어떤 기준으로 하늘나라 백성을 택하고 구원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 같은 사람도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은혜 중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처음 교회를 나간 것은 여섯 살 때였습니다. 경찰관이던 아버지의 발령지를 따라 통영 앞바다의 작은 섬에서 두 해를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교회가 있었고 섬마을 아이들을 따라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기적과 같은 은혜입니다.

 

지금도 남해안 섬에는 교회가 없는 곳이 많은데 삼십여 년 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을지언정 복음이 들어와 있는 섬으로 보내주셨으니 말입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에게는 섬 생활이 고난의 시기였지만, 그 섬에서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을 받은 나는 감히 말하건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두 해를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시 통영 시내로 이사를 오면서 교회와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의 부고를 전해들은 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이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하여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중고등부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 옆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웠고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에 소망을 얻었다가도,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내 부모 형제가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설교를 들을 땐 깜깜한 절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두 가지 말씀을 구별하여 이해할 만한 지혜나 믿음이 그때만 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의 확신이 없으니 세례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1 때 학습세례를 받았으나 6개월 뒤 세례식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세상 즐거움을 다 놓칠 것만 같았습니다.

 

통영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니 얼마나 자유롭던지요. 나는 다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세상도 호황이요 나의 모든 일도 잘 풀려나갔습니다. 대학도 한 번에 붙었고,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전공을 바꾸어 응시한 대학원 시험에도 쉽게 합격했습니다.

 

취직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꿈에 가까이 다가간 듯 했고, 뭔가 성공한 듯한데,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헛헛하고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IMF가 터졌고 서울생활을 정리한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서산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결혼하면 행복만 있을 줄 알았는데, 첫아이 민서가 다운증후군 장애아라는 판정을 받으면서 모든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뒤쳐진다든가, 패배를 맛보지 않은 나로서는 회복이 불가능한 실패자가 된 듯 했습니다.

 

민서가 백일을 맞을 즈음, 남편이 직장을 찾아 홍동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더욱이 남편은 직장인 환경농업교육관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가겠다는 남편을 말릴 수가 없어서 무작정 살림살이를 챙겼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세 번째 부르심이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몰고 가던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이 민서를 통하여 강제로 돌려놓아 버리셨고, 아는 사람이라곤 전혀 없는 낯선 시골 마을에서 하나님은 내 인생을 다시 출발시키셨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그동안 왜 행복하지 못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미 택함을 받은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가 없고, 반드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듬해에, 섬마을 작은 교회와 너무도 닮은 작은 시골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학습세례를 받은 지 꼭 16년만이었습니다. 세례는 나에게 “이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인정합니다”라는 절절한 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이 있은 지 10년 세월 동안, 하나님은 날마다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너무 높은 데 계셔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찾아와 주시지 않을 것 같던 그 하나님이 내 생활 곳곳에 세세하게 찾아오셔서는 살갑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하나님을 떠나 산 10년과,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하나님과 함께 한 10년을 비교하면 딱 지옥과 천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구원해 주시지 않았으면 나는 인생이 저주 덩어리요, 슬픔과 고단함뿐인 줄로만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서를 보내주시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 장애인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은 시골교회로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오늘도 어느 도시의 스산한 골목에서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았던 삶의 통찰력이나 지혜를 시골 어르신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크고 작은 은혜를 입고도 그것이 은혜인 줄 모르고, 더욱이 그 은혜를 글로 써서 세상에 조곤조곤 들려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구원하신 그 일에 나의 의지나 나의 노력은 단 1%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를 지으셨고 나를 아시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구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얼마나 큰 사랑인지 내 평생 글로 쓴다 해도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