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_ 변세권 목사

0
11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변세권 목사_온유한 교회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 끊임없이 점검해야”

새해가 되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여전히 어둡다. 국가의 앞날
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런가하면 세계도 금융 위기로 진통
하고 있다. 개인적인 어려움도 마찬가지여서 가정에는 상처가 있고 공동체에
도 늘 이견이 있다.

세계 경제 어려움에 빠져 있어

우리는 지난 시간 신앙의 길을 걸어오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이 엎드려 
기도했으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답답해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억울해하며 고
민해왔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회역사와 신앙의 전통에서 문제가 되
고 있을까?
그것은 교회의 교회다움의 정체성과 하나님께서 애당초 의도하신 교회의 모
습과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선 목사가 추천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보면 이런 원인에 대
해 “오늘날 현대 교회는 교회와 
국가의 기형적 통합을 성취한 콘슨탄틴주
의, 이성과 신앙의 통전성을 해체한 계몽주의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개인들의 사상누각으로 변질시킨 개인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지적한
다. 
기독교는 먼저 이런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었던 콘스탄틴주의의 영향 아래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가 있어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지켜진다고 생각했
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원래 민족
과 국가를 벗어난 신앙공동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공동체
가 되고 경계가 없다. 각 교회가 주체가 되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일등국가가 되어서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는 논
리는 모순된다.
그런가하면 종교개혁 이후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계몽주의인 인문주의와 합
리주의가 기독교를 또 위협했다. 기독교를 합리주의로 설명하여 합리주의적 
기독교를 만들어냈다. 종교가 초월이 배제되고 의미만 남게 되었다. 의미를 
본질로 보았다.
사실의 기록이 아니고 사실의 개혁이 아
니고 종교의 고백에 불과할 뿐이었
다. 슐라이어 막허와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의 초석을 놓고 믿음을 지성
화 했다. 믿음을 지성화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영성화시키는 것
이 맞는 것이다.
사람에게 말로해서 알아들으면 그것은 사상이 된다. 신앙은 열심과 논리로 
설복 당하는 것이 아니다. 무식한 사람들을 세련되게 만드는 게 목회가 아니
다. 이것이 설교를 논리적으로 똑 떨어지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우리가 하는 것들은 우리의 실력으로 되지 않는다. 자기가 감동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언제 하나님이 결과를 주실 지 아무도 모른
다. 밀어 부쳐야 소용이 없다. 많은 일들을 만나게 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이 
어느 날 선택하게 하신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
다. 
또 하나는 다원주의다. 산업혁명이후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사람들이 사회적
으로 성공한 것도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 이후 물질의 풍요도 이루
었는데도 인간이 더 나아지지 않더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권위와 질
서를 이성과 과학을 동원하여 다원화시키기에 이른다. 전체를 보는 시각을 

포기하고 어느 한 부분을 파편화 했다.
문제는 종교도 주관적이 되어 굳어져서 사람들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보상
이 나오고 이것이 안 되면 범죄가 발생한다. 이렇듯 우리는 인간, 이성, 과
학이 기독교 신앙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세력화, 지성화, 다원화를 경계해야 한다. 믿음은 보상이 아니고 
지켜내는 것이다. 이제는 믿음을 세상적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밝혀줘
야 한다. 하나님 없이는 진정한 인간의 행복과 성취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박국이 고민한 싸움은 현실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만 실현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목회를 하다 보니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 것 같은 갈등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보이는 증거도 내적 증거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 겉으로 표정
이 없게 된다. 목사가 뭐 그러냐고들 한다. 어떻게 목회가 그렇게 서로 다른
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고통과 시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하나님은 고통
과 시련으로 일하신다. 
우리는 어려운 터널이 있을 때 어차피 내가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오해를 받는 일이 있을 때
에도 기가 막히게 오해를 받게 하
고 칭찬을 받을 때도 기가 막히게 칭찬을 받게 하는 법이다. 
어떤 때는 하나님도 원망스럽고 교인들도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때일
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대하자. 우리 교단의 좋은 장점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외적인 문제에 답을 할 것이 아니라 내적
인 충성에 대답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새해가 여전히 밝아왔다. 그러나 역사에는 진전이 없다. 말씀을 통해서 볼 
때만 역사가 보이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한 영혼을 만나셔서 그 영혼
을 간섭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람을 도우
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역사를 보는 자만이 진전 있어

우리는 모든 위치와 자세에서 주류가 잘 하는 것만큼 비주류도 잘해야 된
다. 우리와 다른 조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밝고 소망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전 기사교회와 미디어_박창욱 집사
다음 기사2009 새해
기독교개혁신보
기독교개혁신보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의 기관지로서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이란 3대 개혁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본사는 한국 교회의 개혁을 주도하는 신문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