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채석포_김영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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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채석포

“모두에게 기쁨이 될 거룩한 밤 준비할 터”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12월 들어서도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겨울의 맛을 마음껏 느끼게 하는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잠깐 사이에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오
래된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하니 그곳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순간을 살아가는데 변화무쌍한 환경들이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날
씨를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검었던 기름 바다 많이 회복돼

좁다고 생각했던 우리나라였는데 한 쪽에서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많은 눈
으로 교통사고가 나고 다른 지방에서는 맑은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에 이민 간 친구에게서 그곳은 여름이며 눈이 없고 춥지 않
지만 여름의 성탄절을 우리와 똑같이 보낸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해 이때쯤, 태안 앞 바다의 기름 유출로 인하여 이곳 주민들은 검은 기
름 바다 앞에서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절망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
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사랑의 실천으로 어느 정도 바다가 복구되고 바다를 
떠났던 고기들과 갈매기들이 돌아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들이 많
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을린 얼굴에서도 웃음과 활기를 띠면
서 일상생활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옛말이 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 부임
한 지도 10년이 되어 갑니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숨은 차지만 보는 시
야가 넓은 것을 알게 하고 우리들의 삶만큼 다양한 추억과 감정이 있습니
다. 
10년 전에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지 않아서 이곳에 이삿짐을 싣고 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갓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아들을 두
고 남편과 같이 이곳에 오는 데 그날따라 오늘처럼 눈이 많이 왔습니다. 서
둘렀지만 이곳에 오니 밤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시골의 밤이 일찍 오고 도
시보다 더 깜깜하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이사 오는 날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해동이 되어 
봄이 되면 아들의 복학을 돕고 느긋하게 이곳에 내려와도 좋겠다고 혼자 생
각했었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데 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그후 많은 시간 속에서 눈물도 흘렸고, 추운 겨울에 보온이 되지 않은 처소
에서 보일러가 터져 냉방에서 자기도 하며, 물이 얼어서 해동이 될 때까지 
이웃에서 물을 길러 먹었으며, 조립식 벽 하나를 두고 수련회 팀과 같이 생
활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택을 따로 짓
고 교회당을 재건축하여 아름다운 곳에서 예배를 드리니 그 모두가 하나님
의 은혜입니다.
이곳에 와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목사님들을 노회에서 만나고 아름다운 마
음으로 교제하고 많은 사랑도 받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웃 교회에서 ‘어머
니 기도회’를 하는데 “내 자녀 키운 이야기”를 가지고 간증하도록 요청
을 받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울고 웃으면서 사랑을 나
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노회와 노회장 이재철 목사
님이 시무하는 본향교회의 도
움을 받아 목사님과 사모님 27명이 푸켓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겨울이 시
작되는 계절이었으나 그곳은 여름이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경제 속에 있
어 모두가 망설이고 무거운 마음들이었지만 1년 전부터 계획하고 진행된 일
이라서 실행했습니다. 
무거웠던 마음은 푸켓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새로운 나라에 대한 부
푼 기대와 설렘으로 차 있었습니다. 남태평양의 바다는 채석포의 바다와는 
달리 시시각각으로 다른 빛으로 보여주는 색깔과 원시적인 자연의 섬과 연
한 에메랄드빛의 바다에서 스펙트럼으로 분산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습
니다. 
TV 화면에서만 보았던 피피섬의 스노크링을 즐기면서 바다 속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환경의 섬들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바
닷가에 사는 나는 더 많이 채석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즐기면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어 보기도 하였지만 절제된 자유 속에서 행복한 시간들
을 가졌습니다. 
외국여행을 한번도 다녀오지 못한 목사님들과 사모님을 위해서 부부 한쪽의 
여행비만 감당케 하고 나머지를 채워준 노회와 노회장
님께 여행자 모두는 감
사하였습니다.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생각되었
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마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양손이 필요한 것은 주는 사랑 받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누가 말
했습니다. 푸켓을 여행한 목사님, 사모님들과 함께 같은 일을 추억할 수 있
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얼마 전 겨울날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데 직장암을 앓고 있는 어느 사
모님의 병문안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김장을 하는 날이라 같이 갈 수
는 없었지만 하루 종일 눈물이 났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자신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아픈 동료를 생각하면서 칭찬받는 기쁜 일보다는 외롭고 슬
픈 생각만 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사모들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자신이 아
파도 남편이나 성도들이 걱정되어서 마음놓고 병원 한번 못 가고 아픔을 참
을 수 없을 때까지 견디다가 병원을 찾는 내 자신의 미련함을 생각해 보면
서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새해 예산을 계획하기 위해 안수집사님들이 모였을 때 사모에게 
무관
심하다고 생각했던 집사님께서 ‘사모님이 성가대와 피아노 반주하는데 
너무 수고를 많이 한다’는 말을 남편한테 전해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기쁨
의 눈물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인정받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라 생각하며 열심히 
기쁨으로 했는데 그 마음이 그 집사님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
뻤습니다. 집사님께서 말을 아끼셨지만 성도를 향한 나의 사랑을 알아주어
서 기뻤습니다.
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새해 계획을 세우기 전에 성탄절을 준비
해 봅니다. 도회지의 화려한 네온의 불빛과 구세군의 종소리가 없지만 주일 
학교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되고 나이든 어른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실
버 벨과 거룩한 밤을 준비할 것입니다. 
10년 전 이곳의 포구에 가득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보고 소설책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휴양지인 나폴리를 연상하며 서울에 있는 나에게 짐을 꾸리라고 하
던 남편의 무모함을 원망하였지만 이제는 남편의 그 선택으로 채석포를 더
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과 아름다운 내일을 계획해 봅니
다.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고 있어

이제는 
얼굴에 굵은 주름과 하얀 무서리가 머리에 많이 내렸지만 제2의 인생
을 살아가면서 항상 젊다고 생각하며 착각 속에 살아가는 남편의 회갑 때 
“목사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성도들이 있는 채석포는 영원한 “내 사
랑 채석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