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독교인인가?”_ 손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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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하여>

“나는 왜 기독교인인가?”

손성은 목사, 부산삼일교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두려움 아닌 능력과 사랑”

다윈의 가족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거리, 런던대학이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러셀 스퀘어(Russel Square)라는 조그만 공원이 있습니다. 큰 호텔들
도 몇 개 있어서 투숙객이나 여행객들, 런던 시민, 특별히 런던대학의 학생
들이 쉬면서 담소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런던에서 유명한 철학자 러셀의 거리

러셀 스퀘어, 바로 노벨 평화상을 두 개나 받은 것으로 유명한 버틀란드 러
셀(Bertland Russell)을 기념한 곳입니다. 런던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아주 가깝게 있는 홀본(Holborn)이란 곳의 베리 플레이
스(Bury Place) 34번지는 그가 1911년부터 1916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현대철학의 한 분수령을 형성한 사람, 수학자이면서 또

한 반전평화주의자 등등 여러 가지로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저에게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am I not 
a Christian?)란 책의 저자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런던거리를 거닐
다가 그의 흔적이 있는 곳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Why 
am I a Christian?)라고 자문해보곤 하였습니다. 
러셀이 제시하는 이유들 중의 마지막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공포(fear)
라는 감정이 종교의 기초이다. 그런데 또한 잔인함(Cruelty)의 기초도 바로 
공포이다. 종교가 잔인한 것은 바로 공포라는 공통의 기초를 갖고 있기 때문
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특별히 기독교가 인류의 진보에 방해가 되어왔
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극명해집니다. 프로이드나 마르크스, 혹은 다윈과 비슷비슷한 억
지 이유들을 갖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이런 러
셀의 논리는 킹제임스역에서 “The fear of Go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
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라고 한 말의 ‘fear’를 우리 말 성
경처
럼 ‘경외’라고 번역하지 않고 ‘두려움’ 혹은 ‘공포’라는 말로 이해하
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러셀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류의 ‘fear’(공포)가 아닙니
다. 하여튼 러셀은 종교를,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이런 공포라는 감정에 굴
복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딴에는 의연히 공포에 맞서서 살아야겠다고 생
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이 ‘공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 선 자로서의 두려움이 그의 자서전에 배어 있기 때
문입니다. 마치 무신론자 니체가 자신이 그렇게도 비판하고 있는 기독교가 
진실로 진리라면 자신은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였던 것과도 같습니다. 
허무의 공포, 죄의 심판에 대한 공포, 이런 공포들 때문에 크리스천이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셔서 연약한 인
생들이 여러 가지 공포들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
이 크리스천이 된 모든 이유라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적인 신앙일 것입니
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마음”이라고 하였
습니다. 러셀이 공포를 종교의 기초로 본 것은 바로 이 ‘두려워하는 마음’
을 모든 종교의 기초라고 본 셈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율법주의적 신앙 
형태를 고소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크리스천이 된 것은 
바로 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서인가?” 이것에 대해서 그렇다고 말하
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러셀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
대한 철학자라도 눈이 가려져서 보지 못하였던 것을 보게 된 우리들은 그가 
헤아렸던 수학 공식은 알지 못할지라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라도 하나님 사랑 볼 수 없어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내가 크리스천인 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랑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