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의 눈물과 기도_민경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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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각들

사모의 눈물과 기도

민경희 사모_평안교회

오래 전 일이다. 남편이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자 오래 섬기던 교회에서 나
는 어느 날 갑자기 집사님에서 사모님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젊은 날부터 사
업하던 남편 덕에 사모님 소리를 오래 들었지만 교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았
다. 

‘사모님’ 호칭 여전히 익숙지 않아

때문에 “사모님”을 불러대다가 뛰어온 성도가 어쩜 그렇게 못 듣느냐고 타
박하기 일쑤였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지 못하니 돌아보지 않는 것
이 당연했었다. 호칭에만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모라는 직임에도 익
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교회 근처로 이사를 하고 막내를 동네 교회선교원에 보냈는데 우연히 담임목
사님이 아는 분이셨다. 시댁 어른들께 많은 은혜를 입었다며 학비를 면제해
주셨다. 하루는 사모님이 심방을 오셔서 젊은 집사 시절의 내가 아직도 눈
에 선하다며 내 손을 잡고 두 손으로 감싸고 어루만지다가 다시 등을 쓰
다듬
다가 또 어깨를 감싸 안았다가 되풀이하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실까… 고운 사람이 사모 일을 어떻게 할까, 힘들어서 어쩌
나..” 눈물까지 글썽이며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하셨다. 내심 내가 아직도 
철없는 어린 나이로 보이나 생각하기도 하고 사모가 그렇게 어려운가? 그러
나 하나님의 도구로 부름 받은 귀한 일을 뭐 그리 죽을 일처럼 이러나… 오
히려 사모님이 안쓰럽기도 했었다.
목사 사모가 되자 이제부터는 성도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권면하시던 목사님
도 계셨고, 목사가 얼마나 힘들고 귀한 일을 하는지 알 것이라고 활짝 웃으
며 안아주시던 목사님도 계셨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 생각만 해
도 웃음이 나고 마음에 기쁨이 솟는 성도가 있고,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가슴이 답답하고 힘든 성도가 있다고도 하셨다.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인 친구들을 만나면 목사님 때문에 믿음도 떨어진다
고 하소연을 한다. 담임목사가 너무 자주 해외에 나가는데 다음 주일 성도
들 출석이 줄어들까 봐 광고를 하지 않아서 떠난 다음에야 성도들이 알게 된
다며 “민 사모도 성도들이 목사보고 교회에 나가는 줄 아나
?” 한다. 
목사님과 의견차이가 있으면 바로 다음 주일 목사를 섬기고 순종해야 복 받
는다고 2시간 넘게 외쳐대는, 늘 우연히 한국에 잠시 오신 목사님들이 강단
에 서신다나. 어떤 성도는 신앙의 자태가 같은 사람들끼리 주일에만 따로 모
여서 설교만 해주실 목사님을 초청해서 예배드리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
냐며 한숨을 쉰다. 정말 그들은 심령이 상해서 운다.
그런데 목사님들이나 사모님들을 만나면 성도들 때문에 금식하고 기도한다. 
애통하는 울음을 운다. 기도하기 위해서 금식을 하기도 하지만 입맛을 잃어
서 식사를 못하고 잠을 못 이루거나 우울증이나 위장병을 앓는 신체적인 증
상을 갖기도 한다. 목회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전혀 인격적인 관계를 갖
지 않는 무례한 성도들 때문에 소명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고뇌하는 분
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분들은 자신을 점검하는데 진력을 소모한다. 
괴롭게 하는 성도들을 더 큰 사랑으로 안고 주님이 그러하시듯이 불쌍히 여
기고 기도하려고 무릎걸음으로 주님을 찾는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사랑
의 매는 띠로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쏟아 붓
느라 
힘을 소진하는 안타까운 교회 소식을 듣기도 한다. 말씀을 듣지 않고 고개
를 숙이고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앉은 성도를 보면 “아, 젖을 먹어야 하는
데, 세상에 나가서 한 주일을 어떻게 살려고 저러나” 너무나 안타깝다고 하
면서 실제로 가슴에 손을 대고 눈물을 글썽이던 원로목사님을 뵌 적도 있다.
우리 교회는 작은 상가건물의 지하에 있다. 여름엔 곰팡이가 슬지만 시원하
고 겨울엔 따듯하다. 부르짖고 기도해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아서 좋다. 
어쩌다 들어온 신자들이 두 번 오는 일은 없지만 교회가 작아서 그렇지 하
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자라 여긴다. 
전도를 하지만 우리교회로 강권하지는 않는다. 보내주신 양들을 끝까지 잘 
양육하겠다고 서원하고 헌신하지만 교회에 성도들을 채워 넣기 위해 동분서
주하지는 않는다. 양적인 부흥을 하기 위한 기도보다 열배 아니, 스무 곱이 
넘게 성도들의 신앙이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기도하고 양육에 힘쓴다. 
어느덧 우리 교회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허락하신 모든 환경들 앞에서 
순종하며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고 만족하고, 더 나아가서 “내 잔
이 넘치
나이다” 기쁨의 찬양을 올리는 성도들이 되었고, 서로를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이 속히 채워지고 해결되도록 강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이 되어가
고 있다.
나는 성도들을 가끔 협박한다. “기도 많이 하지 않으면, 말씀을 따라 열심
히 살지 않으면 교회가 무지 커지게 기도 시작할 테다. 교회가 커지면 아마
도 사모인 내가 제일 편할 거다. 성도들 한 사람 한사람 위해 기도하지 않아
도 되고, 그러면 뭐 울고 가슴 아파할 일도 없을 테고…” 고맙게도 우리 
성도들은 정말 협박으로 여기고 ‘타고난 성질’까지 변화시키려고 몸을 쳐
서 복종하는 싸움을 한다.

사모 뜻 따라주는 성도들 고마워

아마도 나는 아직도 앳된 사모 티를 벗지 못해서 대책 없이 무식하게 담대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