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어김 그리고 결핍
이종연 교수_진명교회, 미국아틀란타신학원
교회의 문제는 약속을 거짓으로 하는 데 있다. 공동의 일에 대한 의식이 없
다. 하나님을 조롱한다. 정하고 안 지키고, 때와 곳에서 펼치는 신국 사역
을 도외시한다. 세상일도 이렇게 하면 망하고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고 하나
님이 심판하신다. 하물며 교회 일이랴!
약속 어기는 일 너무도 많아
전체가 모여 기도하며 상의하여 여러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야
만 한다. 원인, 과정, 결과가 일치해야 한다. 그동안 쌓인 결핍이 어느 정도
인지 아는가? 이로 말미암아 형성된 우리 사고 방식과 악습이 교회에 미치
는 영향을 생각이나 하는가? 이런 일은 너무도 크고 무섭고 시급한 개혁의
마땅한 대상이다.
매우 주관적이고 감상적이고 세속적이며 어두움이다. 진리를 받지 못하는 결
과이기도 하다. 예배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부패성과 어두움의 세상 주
관자가 조롱한다. 자기 중심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니 교회관
은 또 어떻겠는가?
개혁교회는 이렇지 않다. 개혁교회 성도들도 이렇지 않다. 어찌 기본을 망각
하여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왜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 이에게 미루는
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를 왜 저버리는가? 왜 적극으
로 일을 찾지 않고 대충하고 틀리고 얼렁뚱땅하는 풍조가 있는가? 매우 악하
고 진리를 대적하는 모습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아 어디부터 손을 대야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문제가 일반은
총인가? 사고 방식인가? 결핍으로 인한 영향인가? 무엇을 뜯어고치고 무엇으
로 채워야하는지 저마다 냉정히 살피고 손보아야 한다. 너무도 상식이하의
심사를 많이 본다.
그러니 하나님이 무엇을 맡기시고 베푸시겠는가? 맡긴다 해도 경영을 제대
로 하겠는가? 그저 모였다 파하고 다음에 또 모였다 파하면 그만인가? 너무
도 고집이 세고, 너무도 주관이 강하고, 너무도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다.
약속을 할 때, 다른 지체 눈치보고 마음에도 없이 알지도 못하고 찬동하는
가? 하나님의 쓰임새의 성격과 분량을 아는가? 왜 하나님의 일과 사명의 필
요에 약속을 하면 그 다음
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시지 않는가? 인
본주의로 하나님을 조롱하여 약속하는가?
어찌 약속을 어기고 말씀을 깨닫기를 바라는가? 누가 고백했듯이 ‘나만 참
여하나?’ 하면서 마음이 인색해지고 딱딱해질 뿐이다. 사명을 다시 돌아보
아야 한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참여해야 한다. 믿음의 분량과 장성은 약속
에 대한 자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김으로 말미암는 채무 문제를 아는가?
요행심리가 생긴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하늘 바라보듯 다른
이에게 떠맡기고도 망각한다. 그러면서 세상 걱정에 사로잡힌다. 교회와 선
포자에 대한 투덜거림이 생긴다. 자기 의에 도취된다. 교회도 땅에 있기에
땅에 관련하여 약속은 거룩한 것이다. 이것은 근본 하나님의 언약에 붙어있
다.
언약을 안다면 그리고 믿는다면 어찌 약속을 번번이 어기는 버릇에 빠질까?
공동의 범죄이고 사명을 내버리는 처사이다. 결핍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이 결핍은 무엇으로 보충하거나 대체가 불가능하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
다, 뒤돌아가지 않는다. 결핍의 축적을 안다면 어떤 자세를 취함이 마땅할
까?
내 힘으로 돈을 버는가, 공
부를 하는가,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나님의 작정
을 아는가? 구원에 나타난 예정을 믿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
했는가? 그럼 왜 약속을 어기는가? 약속 자체를 잘못해서 그런가? 대단한 내
용을 약속이라도 해서 그런가?
약속을 어김에서 생기는 마음과 현실의 일을 생각해보라! 어김 문제에 대해
통회 기도를 드렸는가? 기본 필요이기에 누군가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럭
저럭 땜질될 것이라 생각하고 또 약속하고 또 어기는가?
회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고 어떻게 참여하여 무엇을 해결하는 회의일까?
너무도 기본이고 상식이라 말하기 부끄럽다. 왜 서로 앞장서려고 하지 않는
지 모르겠다. 약속을 안 하면 더 믿음으로 이루어질까? 거짓이다. 약속은 연
약함을 근거로 주신 정치질서이다. 이것을 어김은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음이
요 하나님에게 맡기지 못함이다. 마땅한 필요를, 쓰임새를 내 생각과 차이
가 나더라도 믿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복음을 깨달아 알고 지체로서 각성이 생기고 성령님의 감화가 있다면 따르
면 된다. 약속을 어기면 세상일에 눌리고 힘에 벅차게 된다. 점점 약속을 경
시한다. 내가 이렇게 저렇
게 하여 살아간다. 자칭 믿음으로 충성하며 산다
는 착각 속에 하루살이 인생으로 전락한다.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빈곤하기
한량없다.
우리는 그동안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약속을 어김과 그로 인한 결핍의 영향
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이것이 자기만 아니라 다른 지체에도 영향를 미치
고 세상에게도 미친다! 아이들에게까지 배우게 한다.
하나님이 무능하신가? 배운 복음이 가짜인가? 천국에 자기도 안 들어가고 들
어가려는 사람까지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왜 모여서 기도하고 회의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며 산 체험을 등한히 여길까? 믿음 따로, 생활 따로가
된다. 무서운 타락이다.
하나님의 손길 체험할 수 있어야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약속을 제대로 이루는 신령한 사람다움을 회복하자.
회개하지 않으면 또 구실을 붙여 자기가 정한 길을 가게 될 뿐이다. 복음의
말씀을 절대로 사모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