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는 것은 가장 큰 행복_민경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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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각들

사랑 받는 것은 가장 큰 행복

민경희 사모_평안교회

< 1 >

이사를 했다. 집을 구할 때 자세히 돌아보는 것이 맞겠지만 낯선 사람이 들
어서는 것조차도 민망해서 해가 잘 드는 집인가 만 보고는 결정을 했었다. 
청년들이 어두운 집에 모이는 것이 안쓰럽고 또 대견스러워서다. 

해가 잘 드는 집으로 이사해

주일 오후지만 사택이 아니라 뭔가 좀 차를 마실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
서 흐린 환타 색 꽃무늬 벽지를 고르고 메뉴판도 준비하고 지레 설다. [그윽
한 커피향이 그리울 때… 후렌치 바닐라, 초코 벨벳, 헤이즐 넛, 클래식. 
차의 향기를 따라… 동방미인, 보이차, 자스민, 일엽차, 천상유수, 감입
차…]
이사하는 날 집에 들어서니 병원처럼 천장이며 벽이 온통 하얗다. 뭔가 착오
가 있었나보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서 속상하기 이전에 왜 이렇
게 됐는지 의아했다. 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무 설명도, 해명도 없는 사
람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술 하는 인테리어”라서 더구나 먼저 집을 
돌아보고 둘 중 하나를 택하자고 까지 하더니만. 
그러다 남편이랑 아~ 아마도 그래서 그랬나보다, 문틀은 어디서 구했는지 놀
랄 정도의 파란 색이고 문들은 흰색으로 칠했지만 유성페인트라 노랗게 변질
되어서 무슨 색인지 어두운 것이 베어 나왔고, 또 격자창의 미닫이문은 짙
은 갈색이고, 그러니 여기에 무슨 환타색? 커피마실 까페 분위기? 아마도 그
랬나보다, 서로 마주 보고 웃을 수밖에. 그러나 그것은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 일로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주일 오후에 진단을 하고 가신 집사님들이 필요한 것들을 모아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는 집사님, 면역체계 이상으로 늘 피로
한 집사님, 산재판정을 받고 잠시 일손을 쉬고 있는 집사님.
파란 문틀은 연한 풋사과 색으로, 문들은 거기에 흰색을 더하고, 회색 현관
문까지 안쪽에는 은은하게 풀빛이 비치는 흰색으로 바뀌어 갔다. 전등이 새
로 달리고, 격조 있는 월넛 색의 작은 판자들이 멋진 서가로 조립됐다. 그 
기적은 휴가를 내서 계속 이어졌다. 꺼멓게 벗겨진 주물 문고리가 하얀 도자
기로 바
뀌고 벽에 달린 전기 스위치가 상아색으로 변했다.
너무 신기한 이 일을 듣고 어떤 사모님이 말했다. “사모님이 사랑이 많으셔
서 그렇지요.” 나는 점점 더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의 얘기를 잘 하지 않
는다. 자랑이 되던 시기도 지났고, 이제 내가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우리 성
도들 앞에서 부끄럽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다. 내게 받은 
사랑을 갚는 것이 아니다. 
그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안 신자들로서 내게 사랑을 베
푸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에 지족하며 헌신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집을 가꾸며 행복한 사람들이 내게 그 행복을 나누어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고 마음 따듯한 사람만 있으면 부러
울 것도 없는 내게 그들은 행복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들의 웃
음과 사랑이라는 꽃보다 더 고운 장식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같이 행복하다. 집사님들을 보면서, 차를 준비하고 챙기다가 돕기
는커녕 훼방꾼처럼 여기저기 참견하고 신기해하면서 아이처럼 웃는다. “사
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아~ 나
는 이렇
게 사랑 받아서 더 행복하다~!” 신앙심 부족한 사모처럼 떠들고 신이 난다.

< 2 >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두 번 다녀온 곳이고, 수술 후로는 다리가 부어서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더니 하루를 30시간처럼 쪼개 쓰는 남편이 “목사
와 교회는 노회에 속한 거야”라는 다소 단호한 어조에 더 대꾸도 못하고 압
력스타킹에 압박붕대까지 챙겨들고 여행길에 나섰다.
중국 근로자의 날 휴가기간이라서 13억 인구가 있는 나라답게 어디가나 사람
이 길에 넘치는 것 같았다. 처음 방문했던 2000년 가을, 2006년 2월보다 도
시는 놀랍게 정돈되고 세련된 빌딩들이 높이 솟고, 자전거 물결에 남루하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된 사람들의 무리는 사라지고 외국 비싼 수입차들과 현지
에서 만든다는 현대차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도시의 발전에 감탄하면서 
이 큰 나라와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낼 일들이 무서운 괴력으로 느껴졌다. 
자금성의 규모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놀라고 감탄하는 목사님들, 모처럼 여행
길에 웃음 가득한 사모님들을 둘러보며 덩달아 나도 신이 난다. 자유시간에
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으면서 목회에 관한 얘기들
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
고, 그 힘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더 견고한 성도로 자라게 되더라고 간증
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과 아울러 교회들에, 성
도들의 헌신에 감사했다. 
별로 잘 한 것도 없는데 상을 받은 겸연스러움과 그래도 위로 받는 기쁨으
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목사님들은 그 틈틈이 현지 사역자들을 어떻게 이 곳
에 복음을 편만하게 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댔다.
그런데 여행의 끝에 슬픈 얘기를 들었다. 아니 있을 수도 있는 말에 내가 슬
펐다. 너무 좋고 감사해서 이런 여행이 가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글
쎄요, 큰 교회들이 감당을 좀 해주셔서 했는데 당회에서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왜 그 말 뒤에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돈 얻어서 그렇게
라도 놀러가고 싶을까?’ 하는 소리가 들리듯 하는 건 역시 내 신앙심이 부
족한 모양이다. 아무튼 행복한 출발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여정의 끝을 맺
었다. 기업이 없는 목회자들에게 성도들의 헌신을 통해서 주시지만 그것은 
성도 개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맡기시
고, 물질을 맡기시고, 지혜와, 건
강과 돌볼 힘과…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
며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소유하고 사는 성도다. 성도의 헌신은 목회
자 개인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순종의 제사다. 성도와 목회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군사들이고 한 형제들이다.

서로 부족한 것 채울 때 기쁨 누려

3박 4일 일정을 끝내고 돌아왔다. 우리 집은 천장과 벽 사이에 흰색 멋스런 
모양의 몰딩이 덧대었고 신발장이 새로 들어왔고 구두들이 가지런히 정리되
어 있었다. 근로자의 날 쉬지도 않고 또 천사들이 왔다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