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가득한 화살_민경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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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각들

전통에 가득한 화살

민경희 사모_평안교회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중1 사내아이가 씩 웃으며 두 손으로 초록색 봉투
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10만원 수표 3장과 노란색 봉투가 하나 더 들어있
었다. 편지 밑에 그린 빨간색 하트가 눈에 먼저 들어왔고 편지를 읽다 그만 
눈물이 났다. 

현재가 가져 온 봉투 보고 눈물나

“세상에~ 얘는, 얘는 어쩜 이러니? 너 언제였지? 4학년 때였나?” 
“아니요, 그보다 더 오래 전일걸요?” 
소리도 없이 입도 크게 벌리지 않고 하얀 이만 살짝 들어내며 웃는 모습이 
아마도 언제인지 제 나름대로는 알고 있는 듯하다. 앞에 앉은 집사님을 불렀
다. 
“그게 언제지요? 집사님 유럽 갔던 거?”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유럽을 다녀오셔서는 너무 좋았다고 여행 얘기를 했
다. 가는 곳마다 너무 아름답고 좋아서 사모님이 왔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어휴…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모님 생각이 나던데… 한참을 그러시기
에 “치~! 
그러지 말고 데려가시지?” 하면서 웃었었다. 
옆에 주일학교 꼬마가 앉았다가 사모님은 왜 안가요? 묻기에 아마도 유럽은 
너무 비싸다고도 했던 것 같고, 일본이나 중국은 30만원이면 갈 수 있다고 
했었나보다. “일본 여행은 제가 시켜드릴게요” 그랬긴 하지만 5년 전의 일
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일본 여행가실 사모님께.
민경희 사모님 안녕하세요? 현재예요. 어렸을 때 약속했듯이 이렇게 일본 여
행 가실 돈을 기쁘게 드리네요. 옛날 어렸을 때에는 외국에 나가려면 200만
원 정도가 드는 줄 알았어요.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30만원만 있으면 일본 여행이 어쩌구저
쩌구….” 30만원이면 제가 상상했던 200만원의 15% 밖에 안 되잖아요? 그
래서 저는 “아! 삼십 만원 밖에 안돼? 그럼 내가 사모님 일본 여행 시켜드
리지 뭐…!!!” 라고 말하며 보내드리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정말 보내드리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지금 보니까 30만원
으로는 부족하지만 이 돈 보태서 즐겁게 다녀오세요. ^^ 돈 기쁘게 드려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의 함축적 의미) 2007년 3월 31일 
현재 올림. 

탤런트 한가인보다 더 예쁜 예진이가 중학교 입학 전에 필리핀으로 어학 연
수를 다녀와서 “사모님, 저 좀 보세요” 하며 손을 끌고 교육관으로 들어서
더니 요즘도 다리가 붓느냐며 방문을 잠그고 내 다리를 잡고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이거 필리핀에서 사왔는데요, 다리 붓는데 바르면 좋다고 하더라구
요” 하며 약을 발라준다. 
무슨 할 말이 있나 궁금히 여기고 방에 따라 들어섰다가 얼떨결에 임파선을 
절제해서 붓는 오른 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땀을 흘려가면서 열심히 마사
지를 해주는 아이를 보며 지난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학교 가기 전에는 경찰이 되고 싶다던 예진이는 주일학교에서도 예민하고 사
리분별이 빠르면서도 정확해서 옳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동생이나 친구들을 
때리고 언니들에게 대들기도 해서 꾸중을 듣기도 했었다. 6살이던가? 그 날
은 내게 그 예쁘고 까만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듯이 말하는 걸 보고 아이들 
모두가 놀라서 울고 다 같이 처음 통성으로 기도를 했던 날인데, 무릎에 가
만히 안아주자 목을 끌어안고 “사모님 백 살까지 사세요” 하던 아이다. 
입원해 있을 때는 와서 아무 말 없이 보고 
가더니 너무 많이 마음이 아프고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밖에 나가 있었다며 빨리 나으시라고 편지
를 보냈던 아이가 어느새 중학생이 됐다. 버릇없이 구는 주일학교 동생 때문
에 속상해서 눈물을 찔끔거리기에 “한 대 때려주지 그랬니?” 했더니 “어
휴~ 어떻게 그래요. 너무 화가 나서 때리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참으
니까 너무 속이 상해요.” 검도로 단련된 자기의 힘을 알고 절제하는 아이
로 자란 것이 얼마나 대견스럽던지.
“우리 아이들이요” 하며 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이제는 사위
와 두 아들 녀석들의 여자 친구들을 위해서도 “우리 아이들이요” 하며 기
도한다. 그렇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도 “어느 집사님이요” 하고 기
도하지 않고 “우리 누구요” 하고 기도하게 되는 성도들이 있다. 아마도 내
가 그렇게 하는 줄 알면 이제 40을 다 넘은 사람들이라 싫다하려나? 
아무튼 때로는 아파하고 울면서, 때로는 감사하고 축복을 빌면서 그들을 우
리 아이들처럼 해산해서 낳은 영적인 자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끔은 제 
부모들보다 내가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기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교만
한 
생각을 해서 회개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 자녀라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과 똑 
같이 기도한다.
믿음이 자라고,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다가 혼인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 자
녀들이 또 믿음을 유업으로 받아 장성해 가며 교회 안에서 또 혼인하고, 그
렇게 주님 안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성도들이 자란다. 그들은 나에게 “장수
의 전통에 가득한 화살이다.” 교회의 힘이고 하나님 나라의 힘이다.
어머니 마음으로 가슴에 아이들 담아 

그러나 나는 오늘, 아이가 5년 동안이나 쓰지 않고 모은 돈을 손에 들고 그 
아이를 축복하고 감사 기도를 눈물로 올리지만 앞으로는 “뭘 좋아한다, 뭐
가 있으며 좋겠다, 뭐가 부족하다”는 등의 말은 하나님께만 해야겠다고 다
짐한다. 성도들 앞에서 “뭐가 필요하니 기도해 달라”는 따위의 말은 절대 
혀를 깨물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