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아이들 정서 부모가 알아야죠” _민경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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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아이들 정서 부모가 알아야죠”

민경희 사모_평안교회

저녁식사를 하려던 막내아들이 수저를 든 채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한다. 공
익요원으로 동사무소에 출근하는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손 씻기도 바쁘게 저
녁을 먹는다. 반 공기쯤 먹고서야 정신이 난다며 “엄마… 오늘은…” 하
고 제 얘기를 하거나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묻곤 하는데 오늘은 허리가 너
무 아파서 밥을 못 먹겠단다.

할머니 한 분이 동사무소에 오셨는데, 밑이 여러 갈래로 넓어지는 지팡이를 
짚고 문에서 창구까지 “엄마 정말 10분은 더 걸렸을 걸요. 그렇게 오시더니 
숨찬 소리로 ‘저어기, 거 전씨네가 어디 사는지 아나?’ 그러시는 거에요.”
아마도 잊었던 지인이 언뜻 생각나셨던 모양인지, 집을 찾아가실 지 걱정이 
되어서 집에 모셔다 드리며 할머니를 업었다는 거다. 행여 할머니가 떨어질
까 염려돼서 허리를 많이 숙여서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한다. 동사무소
까지 할머니 걸음으로는 
족히 한 시간을 걸으셨을 것 같은 동네 연립주택을 
잘 찾아갔는데 열쇠 번호를 몰라서 문이 닫히지 않도록 물건을 괴어놓고 나오
셨더란다.

그렇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혼자 계신 것도 마음이 안 좋고 “현관문의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는지 잊으신 건지, 그러다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시려
고, 전씨는 누구 친구셨을까” 하는 생각으로 종일 마음이 불편했단다.
가끔 동네에 재활용박스들을 수거하는 노인의 손수레를 밀어드리다가 아예 앞
에서 끌어다 드리는 막내에게 ‘왜 그랬니?’ 그런 말은 차마 나오지 않고 
“에구… 허리 다치려구. 잘 붙드시라고 하고 허리 펴고 업지…” 하며 혼
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들의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살지’ 한숨처
럼 탄식과 함께 주일학교 아이들 생각이 난다. 

요즘은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다가, 왕따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
는 아이들의 기사를 쉽게 접한다. “단지 혀가 좀 짧아서, 그 이유로 3년을 
괴롭혔더라구요.”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
한 아들의 일기를 보면서 엄마가 오열하는 것을 봤다. 조금 다른 것, 다리를 
조금 절름
거리거나, 흉터가 있다거나, 그렇게 보이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고
도 요즘 아이들은 왕따를 경험한다.

왕따 시키는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거나, 왕따 당하는 아이의 편을 
든다 거나, 그뿐 아니라 욕을 하지 않고 고운 말을 써도 왕따를 당하는 세상
이 됐다. 내 남동생은 딸 둘이 있는데 큰 아이가 중학교에 가서 얼굴이 예쁘
다고 선배들에게 화장실에 끌려가 매를 맞았고 그 길로 아무 대책 없이 바로 
이민을 떠났다.

강남의 소위 부자 아파트 동네 초등학교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효
도하자’ 이런 표어도 붙어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고민거리가 생겨도 말하지 못하고 깊은 병을 앓는
다.

가정은 가족 모두가 쉬는 곳이다. 가정에서 안식하고 충만한 사랑으로 가족 
모두가 힘을 얻어야 한다. 초등학교 어린아이들도 정서장애나 우울증을 앓는 
아이가 있다. 그런 자녀를 둔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녀들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왜 그만한 일에 우리 아이는 상처를 받고 병
까지 생기느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감기 잘 걸리는 
아이, 배탈 잘 나는 아이가 있듯이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여
린 아이들이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언짢아하는 엄마들이 안타깝다.
지난 달 29일 신문에 의정부시청 공무원들 ‘이색 워크숍’ 눈길이라는 기사
가 정말 눈길을 끌었다. 역 발상을 통해 공무원상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의도
였다고 한다. ‘일 못하고 짜증나는 의정부시 만들기’라는 주제로 거꾸로 생
각하는 자세가 혁신의 열쇠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일거리 늘리는 방법, 민원
인 열 받게 하는 방법, 동료에게 왕따 당하는 방법 등등.

자녀들에게 그런 것을 한 번 써보라면 어떨까? 부모님 화나게 하는 방법, 특
히 엄마를 화나게 하는 것 등. 얼마나 긴 보고서를 우리 아이들이 써내려 갈
지 어머니들이 보고 자녀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