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를 위협하는 사조들_이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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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에세이

개혁주의를 위협하는 사조들

이차식 목사/ 덕일교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
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
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1: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
이니” (벧전1:23).

이러한 성경의 교훈이 신자로 하여금 방종하게 만들거나 경건을 무시하게 만
드는가? 그렇지 않다. 견인에 대한 확실성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처
럼 신자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거나 방종함이나 경건을 무시하는 일
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더욱 겸손하게 하며 참된 경건과 모
든 환란에서의 인내와 뜨거운 기도, 감사생활과 선행의 근원이 된다. 이 은혜
는 하나님께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게 
하시고 묵상하게 
하고, 성례를 행할 때 그 말씀으로 권면하고 책망하며 약속함으로써 보존, 유
지, 완전하게 하신다.

경건에 이르게 하는 성경 말씀

육신의 생각으로는 성도를 견인하심에 대한 이러한 교리를 이해할 수가 없
다. 사단은 선택교리와 견인교리를 혐오한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선택과 견인
교리를 용납할 수가 없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은 견인교리를 조롱한다. 
무지한 사람과 위선자는 이것을 남용한다. 이단자는 이것을 반대한다. 심지
어 칼빈주의를 추종하는 자들 중에서도 이러한 교리를 낯설어하며 부담스러워
하거나, 실제로는 기독교 역사상에 이단으로 정죄된 비슷한 교리와 사상을 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모든 사도들과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의 선택과 견인하심의 교리를 수 없이 설교하고 가르쳐 왔으며 신실한 성도들
은 이 교리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끊임없이 사랑하고 옹호해 왔다. 개혁자들
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처럼 성경만을 주장하지 않고 성경과 신조와 신앙고
백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바른 교회를 이루어 온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한때 교회
의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아르미니우스의 교리들이 복음주의라
는 미명아래 모든 교회에 무차별적으로 전파되고 가르쳐지고 있다.

복음주의 미명 아래 변질되는 교리들

물론 복음주의는 개혁주의와 여러 점에서 일치한다. 개혁주의는 가능한 한 복
음주의의 좋은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적잖은 이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의 내용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내용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개혁주의는 자
신의 관심이나 동의하는 부분을 출발점으로 삼고 가르치고 옹호하는 복음주의
의 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복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무오한 것으로 옹
호한다. 그들은 진화론을 부정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도 성경의 범위를 벗
어나지 않고 성경적인 답을 찾기 위해서 애를 쓴다. 생활방식에 있어서 동성
애를 반대하고 낙태와 같은 죄의 행동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반대한다. 전도
와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애를 쓴다. 그들의 이러한 것들에 대하
여 개혁주의는 다행으로 여기고 좋은 점들을 인정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
은 개혁주의가 믿는 주요한 교리들 중에서 언급되지 않고 
무시되어 많은 내용
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따르는 것은 개혁의 퇴보
인 것이다. 

진정한 개혁주의는 복음주의 극복하는 것

오늘날 복음주의 가운데는 아주 교활한 모습을 띄고 교회를 위협하는 사조들
이 있다. 그들은 교회와 성도가 무엇을 믿느냐 어떤 교리와 신학으로 전신갑
주를 입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는 가치나 중요성을 두지 않고, 단지 그리스도
를 닮거나 어떤 정신이나 영적 분위기를 느끼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하
나님의 하신 일이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며 교회의 신조가 전통적으로 무엇
을 가르쳐왔는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수많은 체험이나 능력
을 강조하며 어떤 집회에서의 느낌을 강조하며, 천성적인 성품이나 교양적인 
세련됨이나, 인간됨됨이나, 경건해 보이는 것이나, 소위 영성을 참된 기독교
의 은혜로 오인한다. 
그들은 착각하기를 개혁주의는 메마른 지성주의며, 복음주의는 감성적이고 영
적으로 살아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정
확하고 분명한 지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어떤 정신, 태도, 삶의 관점, 얼 
그런 것만 있
으면 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한 것은 이교나 이단들에게도 찾
을 수 있는 것들이다.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 필요해

그들은 개혁주의에서 강조하는 신조와 신앙고백을 몰라도 사람들이 선하게 
살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고 남을 도와 주려하고 그런 마음만 있으면 그들
이 무엇을 믿는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구원에 있어
서 성경이 인간을 어떻게 가르치며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필요가 얼마나 절
실한가에 대해서 잘 못 파악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르미니우스
의 사상은 돌트 총회에서 이단 사설로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신학에세이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더많
은 위로와 소망으로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