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교회 성장의 코드, 메가 트랜즈(Mega Trends)
김병혁 목사_에드먼톤 갈보리 장로교회 협력목사
얼마 전 미국의 개신교 복음주의 신앙을 대변하는 「OUTREACH」라는 잡지에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교회들에 대한 심층 기사가 실렸습
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80년 중반, 미국 전 대륙을 걸쳐 30여 개도 안되던
메가처치(Mega Church, 한 지교회의 주일 출석 교인 수가 평균 2,000명 이상
인 교회)가 현재 830개에 달하고 있으며 평균 10,000명 이상이 출석하는 메
머드급 기가처치(Giga Church)는 30여 개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러한 교회들의 기아급속적인 성장은 ‘메가 트랜즈’(Mega Trends)라는 새로
운 교회 용어를 창출하면서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교회로서의 관심사로 확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메가 트랜즈’는 더이상 미국 교회만의 화두(話頭)는 아닌 듯 싶습니다.
해방이후 교회 역사상 유례 없는 교회
성장을 구가하였지만, 90년대 들어 교
인 수와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급격하게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한국 교회로서 미국 교회들의 관심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메가 트랜
즈’ 열풍 현상은 침체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국 교회에 신선한 자극
인 동시에 새로운 대안으로서 여겨질 만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대형 교회들
과 몇몇 이름난(?) 교회들은 일찍이 이러한 미국 교회의 흐름과 분위기를
잘 감지하고서 자신들의 교회에 적용시키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메가 트랜즈’의 핵심 내용
‘메가 트랜즈’는 가장 확실한 21세기형 교회 성장 코드로서 자리매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가 트랜즈’는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을 두고 말하
는 것일까요? 최근 미국의 하트포드 종교 연구소(Hartford Institute for
Religion)라는 곳에서 이 현상과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
했습니다. 이 기관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현대 교회의 새로운 트랜드
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의 메가 처지 그룹들은 어떤 특정한 교단이나 교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경향의 교회
에서부터 은
사주의와 구도자주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하고 넓은 범위로 나타
나고 있습니다. 반면, 이들 교회들로부터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 가
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교회)전통에 대해 부정적이며(Nontraditonal), 둘째, 세상의 문화에
대해 민감하며(Conventional), 마지막으로 교회와 세상과의 혼(연)합을 추구
한다(Composite)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의 유행이 되어 가
는 ‘메가 트랜즈’의 핵심 내용이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고백해 왔고 또
한 우리가 견지해 나가야 할 개혁주의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메가 트랜즈’에 관한 개혁주의 신앙의 기본적인 정신은 역사적
인 교회 전통에 충실하며(Traditional), 세상의 문화와는 엄격하게 구별되며
(Distictive) 그리고 세상과의 무분별한 연합을 배격한다(Pure)는 것입니
다.
‘메가 트랜즈’를 경계해야 할 이유
하지만 ‘메가 트랜즈’의 교회 비전을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들이 세상과의 더 깊은 교통(交通)을 명분으로 기독교 신앙의 객관성과 역사
성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신앙고백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체념이 그 사실을 입증합니다. 두 세대 전, 루이스 벌콥은 그의 시대를 가리
켜, “현대는 반(反) 교리적인 시대이다. 도그마(dogma)에 대해서만 아니라
교리에서도, 그리고 교리적 진리의 체계에 대해서도 혐오감이 존재한다”고
그의 「조직신학 서론」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의 ‘메가 트랜즈’의 환상을 가진 대부분의 교회들
에게서 신앙 고백(교리)이라는 말조차 들어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규모와 영향 면에서 역사상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로마 카톨릭의 전철을 그
대로 밟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의 전설이 채 확인되기도 전에, 하
나님의 보편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등장과 함께 교황과 성직자들을 위한 거
짓 교회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그토록 확실했던 진리의 체계는 무지와 미신
의 심연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교회당이 화려하게 꾸며지고, 십자가 첨탑이 높아가고, 성직자의 말과 의복
에 권위가 더해가고, 일반 회중들의 교회를 통한 구원의 열망은 간절해 갔지
만 진리가 사라져 버린 교회의 뜰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
씀보다 자신들의 종교적 목적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는 종교인들
에게는 진리가 정확하고 부요하게 드러나는 일은 오히려 부담일 수밖에 없습
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을 따른다고 하는 교회와 목회자들
마저도 이 시대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현상적인 이유를 근거로 역사적
인 교회의 신앙 고백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에 관해 가장
참람했던 시대로의 회귀(回歸)를 의미합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는 신앙고백(교리) 교육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의 대전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
는 신앙’(Coram Deo)과 ‘오직 믿음’(Sola Fide)은 신앙의 대상에 대한 바
르고 참된 믿음과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
면, 종교 개혁에 기초한 신앙이란 ‘순수한 신앙고백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가르침과 세상과 결탁한 변질된 기독교 사상에 맞
서 종교 개혁의 횃불을 치켜들었던 종교 개혁자들이 모진 박해와 고난 속에
서도 성경에 충실한 신앙 고
백을 만드는 일에 결코 좌절하지 않았으며, 이것
으로 진리의 나침반을 삼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변화하는 세
상은 우리에게도 진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메가 트랜즈’가 세상의 모든 교회의 상식이 되는 날이 온
다고 할지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말씀이 있습니다.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잠 22:28). 참된 신앙 고백을 통한 믿음의 확신
과 증거가 교회의 상식이 되어지는 그 날까지 이 귀한 지계석을 지켜 나갑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