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연두빛 새순이 짙푸른 신록의 기운을 더해간다. 어둡고 무거웠던 마음들이
눈을 들어 산을 볼 때마다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저렇게 꾸준할 순 없을까… 나도 쓸 만한 인간한번 되어봐야지…’ 거룩
한 영성에의 회복을 다짐해본다.
금이 가고 깨진 못생긴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주인은 물을 길어 올 때는
늘 그 항아리만을 이용했다. 깨어진 항아리는 자신을 아껴주는 주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깨지고 금간 항아리로
물을 길어오면 돌아오는 길에 많은 물이 새어버려 주인이 수고한 만큼 보답
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깨진 항아리는 주인에게 진지하게 질문했다. “저를 버리시고 새
항아리를 구입하세요. 아니면 다른 항아리를 사용하시든지… 저는 너무 볼
품도 없고 주인님을 더 힘들게 만들뿐인데요.” 그러자 주인은 빙그레 웃으
며 말했다. “우리가 우물에 다녀오는 길
을 한 번 보렴” 항아리는 모처럼
주인과 함께 다닌 길을 쳐다보았다. 길가엔 예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었
다. “어떻게 이 산골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을 수 있을까요?”
주인이 대답했다.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이란
다.” 주인은 입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대답해 주었다. 그날부터 깨진 항
아리는 자신의 깨지고 못생긴 모습을 사랑하기로 했다.
주님의 생애도 늘 금가고 깨진 항아리 같은 분이셨다. 가는 곳마다 쉬지도
먹지도 못하시고 병들고 지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
을 내어주셔야 했다. 그분의 깨진 틈에서 흘러나온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고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
의 목숨마저 깨뜨리셔서 그를 믿는 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시고 아
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셨다. 사람들은 깨지고 못생긴 항아리를 쉽게 내다버
린다. 인간관계 명단에서 빼어버린다. 그러나 깨진 항아리를 통해 하나님께
서는 메마른 산길에 꽃을 피우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목회를 하다보면 나름
대로 고민이 다 있다. 목회자들의 사역과
삶은 어찌 보면 고통의 연속이다.
글로 옮길 수 없는 혼란과 아픔과 상처가 먹구름처럼 가득하다.
제임스 딥슨은 ‘기도하는 사람들도 불신자와 똑같이 어려움을 당한다. 그것
을 부인한다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준비가 전혀 되지못한 사람들에게 더
욱 심한 고통과 환멸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일찍 주
의 품으로 보내야하는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너무 사랑하셔서 일
찍 데려가셨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
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가족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시지 않을 것
이다. 도리어 인간인 우리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나
을 것이다. 이렇듯 납득이 안 되고 설명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
의 섭리와 목회의 고민들 앞에서는 설득이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면 된
다. 안달한다고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깨진 항아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사소
한 문제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목회가 휴양지는 아니지 않는가? ‘너무
바빠서 기도 합니다’까지는 못가도
모든 환경에서 기도하며 주님을 의지하
는 삶만큼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오늘도 다리 없는 강가에서 강을 건네주려
고 기다리는 합신 교단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마음을 나는 안다. 내가 한심
해 보이고 할 말조차 없는 경우가 있는가? 때로 실패와 절망이 있는 것은 자
기의 의를 버리고 주님 안에서 주님을 붙잡게 하시는 믿음의 훈련인 것이
다.
오늘도 흐르는 강물처럼 동일한 부지런함으로 우리 끝까지 한 번 달려가 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