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민경희 사모|평안교회
“기도를 어떻게 하면 오래 할 수 있나요?”
중보기도를 목적으로 모인 ‘중보기도팀’에서 모임을 인도하고 통성으로 기
도를 마친 후의 일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처음 듣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도를 어떻게 하나요?”라거나 “무슨 기도를 해야 하지요?” 묻기도 한
다.
어떻게 오래 기도할 수 있나…
막내아들이 세 살 무렵, 외출을 했는데 오래 전 일이라 어디를 가던 길이었
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 되어있는 장면이 하나 있
다. 세살박이 아들에게 내가 기도를 처음 ‘제대로(?)’ 배우게 된 날이라
고 생각한다. 세 살이라니까 ‘에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아이는 1982년 3월생인데 이사하기 전 동네에서 여름을 막 넘긴 초가을 즈음
이니 분명 2년 6개월쯤 됐을 게다.
양손을 벌려 이모와 엄마 손을 잡고 깡충거리며 걷다가 매달리
다 하는 아이
에게 “네가 하나님께 기도해라. 엄마랑 이모랑 어디 가는데 ‘좋은’ 택시
‘빨리 오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렴!” “그래, 우리 지원이가 기도
하면 택시가 빨리 올 거야.” 아이는 그대로 매달려 걸으며 “하나니~임, 우
리 나가요.” 그러는 게 아닌가?
지금은, 나보다 조금 먼저이긴 하지만, 나처럼 뒤늦게 사모가 된 언니랑 나
는 그만 아무 말 못하고 아이를 보고, 둘이 마주 보고 웃지도 못하고 하늘
을 봤다.
“하나니~임, 우리 나가요”
그 애가 다섯 살 때는 비염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이비인후과 대기실에 많
은 환자들이 있고 치료실 의자 한 쪽에 앉은 한 아이는 양쪽 코에 긴 대롱
(솜을 말아 약을 바르는 치료 기구)이 꽂혀 있었다. 막내 아들 지원이가 무
릎에 앉아 “엄마, 기도해주세요” 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지원이가
요 코가 아파서 지금 병원에 왔는데요, 치료 잘 받고…” 기도하는 내 귀에
고개를 돌려 입을 살짝 대고 막내가 말했다. “엄마, 그런 거 말고, ‘무섭
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 줘요.” “…!”
간단하고 단순하게 아뢰는 것, 치료는 해야 하는데 주님이 함께
계셔서 “무
섭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 무엇이라고 하나
님께 설명하듯이 많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금 나가요”처럼 그 상
황만을 그대로 아뢰는 것, 그것이 기도였다.
10살 때는 천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서 입원한 아이 손을 잡고 눈물범벅이
돼서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했더니 “엄마, 그럼 하늘나라는 언제 가요?”
묻던 아이다.
상황을 그대로 아뢸 수 있어야
함께 식사라도 하려면 나보다 아들 기도가 늘 너무 길어서 하루아침에는 콘
플레이크를 먹으려고 우유만 부어놓고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였더니 “엄마,
그것만 드실 거 아니잖아요?” 그렇게 나를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
롭게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어린 스승이다.
무슨 기도를 그렇게 길게 하는지 궁금하게 여겨지기도 하던 차라 “누가, 엄
마더러 기도를 어떻게 오래 하느냐고 묻던데… 넌 무슨 기도를 그렇게 오래
하니?” 아이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감사한 게 얼마나 많은데, 감사만 다
해도 길지요”라고 대답한다.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만이 아니라, 사랑 많은 엄마를 주신 것(물론 순전히
우리 아이 표
현이다), 가족들, 형제, 친구들, 교회 식구들… 그들에게 베푸
시는 은혜를 감사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고 그들을 축복하고… 그
래서 막내는 매일 밤, 문득 누군가 생각나고, 무슨 생각이 떠오르면 밥을 먹
다가도 수시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낭랑한 소리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
가 길게 이어진다.
“감사한 게 얼마나 많은데…”
기쁨이 없는 것, 감사가 없는 것, 기도할 것이 없는 것, 기도하지 않는 것
은, 그건 아직 ‘구원’의 의미를 모르는 거다.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의 자
리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고 양자의 영을 받은 놀라운 은혜를 모르고 있는 거
다.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도 알지 못하는 거다.
잠자리에 들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한 날을 감사하고 “내 잔이 넘치나
이다” 만족한 찬양을 올린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으니 벗들을 위해서는 그들의 모
든 필요를 아뢰고 강청하느라 새벽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