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들의 행진
유화자 교수|기독교교육학
얼마 전에 치러진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의식 있는 기독교
인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의 인파가 운집하고, 세계 각국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행여 장례식에
늦을세라 앞다투어 바티칸으로 모여들었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적 염문의 주인공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그 세기적(?)인 재혼을 연기하
면서까지 장례식 참석을 서둘렀다는 후문이다.
그 장례식장은 아마 최근 세계 정상급 지도자들이 운집한 최대 규모의 경연
장이거나, 일명 ‘세계 지도자 박람회’를 방불케 하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 장례식의 참석 여부가 마치 세계 정상급 지도자 대열에 합류하는 어떤 자
격증이나 입장권이라도 되는 양 온 세계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 어마어마한 대규모의 장례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일종
의 공포심마저 느끼게 되었다. 얼마 전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를 휩쓸었던 해
r
일이 그 장례식 장면에 오버랩 되는 것같은 불안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
까?
분명한 것은 그 장례식 모습이 결코 성경적이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 보혈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본
질적 죄인인 한 인간의 죽음이, 인기있는 세계의 한 종교단체 지도자였다는
이유로 그런 초인적 경외라고까지 표현할 만한 지경의 칭송을 받아야 하는지
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나 설명으로도 납득이 불가능할 것같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원색의 화려한 집례복들과 근엄하기 이를데없어
보이는 복잡한 장례 절차들은 마치 만방의 열왕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권위
와 위엄을 총동원하여 인간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최대의 영광과 존엄을 과시
하는 ‘제왕들의 행진’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제왕들의 행진’은 새삼 죽은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서만 볼 수 있
는 풍경이 아니다. 매일의 삶과 현실속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무수한 ‘제왕
들의 행진’이 날마다 우리 주변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도자는 어떤 공동체 사람들의 복리증진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역할과 책
임
을 진 사람이다. 특히 크리스천 리더들은 복음전파의 역사적 사명을 하나님
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이 복음의 중요성 때문에 크리스천 리더에게
는 성경 말씀이 갖는 영적 권위가 수반된다. 복음사역에 필요한 말씀의 권위
와 영예, 그에 걸맞은 존경과 예우가 또한 크리스천 지도자들에게 부여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책임과 역할 수행에 필요한 말씀의 권위와 영예, 사람들의 존경
과 예우가 지도자들에게 일상화되고 오래 계속되다 보면 그 권위와 예우의
출처와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남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지
도자들이 그것들을 마치 자기 고유의 생득적인 요소나 자신의 개인적 소유물
로 착각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착각과 망상이 무의식중에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런 특권의식이 그의 삶과 리더십
에서 자신을 마치 제왕처럼 행동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망상과 착각에 빠진 자신의 주제파악 능력을 상실한 ‘제왕들의 행진’
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의식있는 기독교인들의 고통과 비극이다. 우리 하
나님은 이런 지도자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
실까? 하나님과 사람들의 이
런 고뇌와 고통은 아랑곳없이 그 착각과 망상의 수위와 강도를 높여가는 지
도자들이 증가일로에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성이 있다.
전도사나 목사, 교수, 박사, 선교사, 학장, 총장, 노회장, 총회장, 회장 등
다양한 크리스천 공동체 리더의 타이틀속에 안주하면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
들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교육, 훈련, 지도, 지휘하는 일을 하며 존경과 대접
받는 일에 익숙하다 보면 어느 결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위엄, 능력을
마치 리더 자신의 전유물인 양 망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죄악된 본성의 소유
자인 인간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크리스천 리더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지
에 대한 성경적 리더십의 기본 개념만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도 이런 어리
석음속에 함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하나님 앞에서
계속 점검하면서 겸손히 하나님께 엎드리는 기도의 사람이라면 주제파악에
실패한 오만한 ‘제왕들의 행진’에 합류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
다.
크리스천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종의 역할을 하나님과
사람 앞
에서 공적으로 위임받은 공적인 종이며, 남을 섬기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런 성경적 지도자상을 그의 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성경속에서 분명히 우리에
게 제시하고 있다.
‘종’(Servant)이라는 크리스천 리더의 신분을 입으로 만의 시인이 아닌,
언행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입증해야 할 준엄한 책임과 임무가 지도
자 된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오늘도 다양한 지도자의 타이틀속에서 남을 가
르치고 인도하는 일을 하는 지도자들이 이런 종된 신분을 명심하면서 하나
님 앞에서 뼈를 깎는 자기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제 파
악에 실패한 오만한 ‘제왕들의 행렬’이 아닌 ‘종의 행진’에 생애를 투자
하는 지도자들이 되기를 주님은 소원하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