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줍니다”
유화자 교수/ 합신 기독교교육학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과 독일은 오랫동안 공산주의와 자유진영으
로 분단된 나라들로 남아 있었다. 그런 독일이 통일을 이루게 되면서 이제
는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현실이다.
지금은 통일을 이룬 독일이, 통일 전 동서 베를린으로 분단되어 공산주의
와 자유주의 양 진영으로 나뉘어 한창 서로 적대시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집
중시키고 있었고, 국토의 분단으로 민족적 비극과 고통을 한창 겪고 있던 때
의 일이다.
어느 날, 한 무리의 동베를린 사람들이 대형 트럭에 쓰레기를 산처럼 가득
싣고 와서 서베를린 진영에 쏟아 붓고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그 쓰레기
더미에는 갖가지 폐물과 쓰레기, 썩은 음식물 찌꺼기 등 보기에도 역겹고 더
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역겨운 냄새에 사람
들은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던 서 베를린 사람들은 그 많은 양의 쓰레기를 말끔히 청
소하고 깨끗이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독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대조
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큰 트럭을 동원하여 그 더러운 쓰레기를
분류하면서 깔끔하게 치운 후 그 곳을 이전보다 더 깨끗하고 산뜻하게 정리
하였다.
그런 후 서독 사람들은 다른 대형 트럭에 많은 종류의 다양한 통조림과 상
하거나 부패할 염려가 거의 없는 식량과 식료품 등 보관이 용이하면서도 오
래 보전할 수 있는 품질 좋은 식품들을 가득 싣고서 그 식품들을 아주 보기
좋고 산뜻하게 동베를린 진영에 쌓아 두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식품들 곁에
누구나 볼 수 있는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은 대형 표지판을 세워 두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서독사람들을 증오하고 적대시하면서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들의 적대감을
서독사람들에게 전하고 표출하려고 애썼던 동독사람들에 비하여 이 얼마나
품위 있고 멋있는 대응 방법인가! 마치 한 바탕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
지에서 통쾌하게 승리를 거둔 용감한 병사들이 긴장감을 풀고 흐르는
땀을
씻으면서 시원한 생수를 마시고 있는 것 같은 그런 후련하고 시원스런 느낌
을 받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과 인생관, 그리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자세와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동일한 상황과 현실 속에서도 어떤 사람
은 그 속에서 절망과 부정적 요소들만을 보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비관론자
(pessimist)가 있다. 반면에 바로 그 현실과 상황 속에 잠재해 있는 긍정적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고 희망에 부풀어 하는 낙관주의자(optimist)도 있
다.
이런 지혜와 슬기, 긍정적 인생관의 소유자라면 어떤 인생 여건 속에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격려의 사람일 수 있으며, 역경 속에서도 창조
적 도전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인생관(the positive view of life)의 소유자
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시각으로 인생을 보는 사람은 결코 용기 있는 사
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유자도 아니다.
성경 민수기에서 우리는 가나안을 정탐한 12족장들의 아주 대조적인 상반
된 보고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육신의 눈으로 본, 자신
들과 비교될 수 없는 거대한 인종과
어려운 상황 속에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온 백성들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
아넣고 있다. 그러나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
속하신 언약의 땅이요, 또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직접 12지파 대표들을 정탐하도록 파송한 땅이었다.
적어도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런 중요한 시점에서 각 지파의 대표로 선
택받은 지도자들이라면 육안으로 본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에만 연연하
여 백성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민
족 구성부터 출애굽의 과정, 광야에서의 생활 등등 ‘이스라엘’이라는 민
족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산물(the product of miracle)
이며 복의 열매가 아닌가!
당시 열 지파의 대표들은 가나안의 현실 자체에 대한 비중이나 중요성 대신
에 장차 하나님께서 행하실 역사하심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을 ‘메뚜기’로 비하하면서 하나님
을 향한 믿음의 눈에 스스로 맹인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 믿음 없는 지도자
n와 불신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쏟아 부으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지금
도 준엄한 역사적 경고와 교훈으로 우리에게 닦아오고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 자신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열 사람의 대표들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확신을 줄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믿음과 인격 안에서, 신실한 삶의 내용과 진
수를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 나누어 줄 수 있었더라면 한국
은 여러 면에서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이 이
러한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