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오면_이강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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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오면 

이강숙 집사/ 순천제일교회

봄 햇살 따라 은빛 너울 넘실대는 섬진강 변에 홍매화, 백매화가 꽃이 필 
듯 말 듯 몽우리 지어져 있다. 그 봉우리들은 다시 움츠러들면서 차디찬 눈
송이를 맞이하기도 한다. 예년보다 더디게 다가오는 봄! 게다가 3월 폭설이 
내려 동장군은 그 위세를 당당히 떨치고 말았다. 금새 꽃을 피워낼 것 같던 
개나리는 움트다 추위에 얼어붙어 따사로운 햇살에게 연일 빨리 봄이 오라
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이나 정보들이 너무 많
아 밀려 있기 태반이다. 데이비스는 일상 중에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구
매 활동을 도와줄 에이전트나 가이드가 필요한 현상을 가리켜 요다이즘
(Yodaism)이라고 했다. ‘요다’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외계인인데 이를
테면 지식중개자를 가리킨다. 우리는 요다이즘이란 신생어를 만들어 낼 정도
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함께 걷고 달리며 살아가
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의지하며 함께 하는 신앙 생활만은 변치 않으려고 
애쓰며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3월 넷째 주일은 부활절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초석이 되는 부활. 부활이 없
으면 소망도 없고 소망이 없으면 하늘나라의 소망도 없다. 

어린 시절 부활절이 뭔지도 잘 모르던 그 때 예배당에 가면 하얀 솜 위에 예
쁘게 색칠을 한 달걀을 하나씩 주었다. 하나 더 얻으려 해도 너무 그림이 예
뻐서 순식간에 다 가져가는 바람에 덤을 얻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
면 남동생만 둘인 나는 그 달걀 하나를 종일토록 여기에 감추고 저기에 감추
고 다니다가 저녁 무렵이 못 되어 기어이 깨뜨리곤 했었다. 이런 연유로 그 
이듬해 부활절엔 동생들과 함께 교회에 가려고 해도 남자는 제사를 드려야한
다고 거절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한 체 또 다시 혼자 교회로 가지 않
을 수 없었다.

부활절 달걀에는 무지개 빛 사인펜으로 그린 천사도 있고 십자가의 모습도 
있었다. 게중에는 가시 면류관을 그려 넣은 달걀도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면
서 가슴이 아파 물 칠 해가며 가시 면류관을 지운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
면 
사인펜 잉크가 온통 손을 물들이기도 했다. 

어느 해 부활절에는 교회에서 그림 없는 달걀을 나누어주며 그림을 그려 넣
는 행사를 했다. 그때 그리던 빼뚤빼뚤한 그림은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
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한 획씩 그려 넣고 말린 다음에 
그 위에 색을 덧 입혀야 깨끗하게 그려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한 개
를 완성하기까지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 후 완성된 달걀을 보
면서 신기한 표정으로 교회 친구들과 바꾸어 보며 서로의 그림을 평해주기
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시
작했다 한다. 달걀은 겉모양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력이 존재하는 것
이어서 부활절에 달걀이 쓰인 것이라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두 아들들이 교회부설 유치원을 다닐 때에는 부활절이 
되면 저마다 하나씩 달걀에 그림을 그리고 셀룰로이드 색지로 싸서 강단에 
올리기도 했다. 그때 그림을 그릴 때에도 갖가지 색으로 젊은 예수님을 만들
어 내기도 하고 할아버지 예수님을 그려 넣기도 하고 작은 성경책 그림을 그

기도 했는데 그 성경책이 꼭 만화책처럼 그려져 유치원이 떠내려가도록 웃
기도 했다. 

또 셀룰로이드 색지가 손에 닿으면 땀이 밴 손에 색깔이 묻어나 집에 오면 
한참을 씻어내느라 혼 줄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다 완성된 부활절 달걀을 
가지고 와서 이제 예배드렸으니 먹어도 된다고 하면서 껍질을 벗길 때는 얼
마나 아까워했던지… 먹기는 해야겠고 그림 그린 것을 없애는 일이니 아깝
기도 하였다. 그래도 한 입 한 입 베어먹는 아이들 입이 천사의 모습처럼 보
였다. 

내가 자랄 때는 맘놓고 교회 간다는 소리도 못하였다. 교회 행사가 있을 때
마다 맘 졸이고 애태우며 교회에서 일하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발
소리, 대문소리에 들킬까봐 까치발을 떼며 고양이걸음을 해야만 했었다. 성
가를 하거나 연극공연을 하려면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도서관이
나 친구 집에 간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가야 했다. 

교회에 도착해서 기도를 드릴 때 첫 번째 기도는 온 가족이 함께 교회 다니
고 부모님께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후로 어
머님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도 열심
이시다. 아직 남은 두 남동생들
을 믿음의 식구로 만드는 것이 여전히 기도 제목으로 남아 있다. 

지금 나의 두 아들은 모태 신앙으로 시작해서 주일마다 교회 가는 것을 좋아
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동안 배운 악기 솜씨를 
예배시간에 유감 없이 발휘하며 반주를 하는 모습에서도 한없는 감사를 느낀
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며 은혜로운 시간을 갖는 것처럼 큰복이 또 어
디 있겠는가…

요즘 옛것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부활이란 말을 많이 쓴다고 한다. 교복 부
활, 연탄 집 부활, 복고풍 옷들의 부활 등등 ….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는 
부활절은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기뻐하며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부활절을 맞아 이 기쁨을 온 세상에 전하
고 싶다.

이젠 부활절이 되면 달걀을 받아오기보다는 예쁜 그림을 그리고 은박지나 한
지로 싸서 교회 어린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어른이 되고 보니 가슴을 부풀
게 했던 지나간 그 세월들이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