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해설(5) 김영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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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해설

김영재 교수/ 합신 역사신학

9. 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고백합니까?

성경이 예수의 잉태와 탄생에 관하여 말씀하는 대로 믿고 고백합니다(마태
복음 1:18). 선지자의 예언대로 만백성을 구원할 구세주가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일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의 합리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심으로써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윗의 자손이 되셨으며, 다른 사람들과 다름
없이 온전한 사람으로 나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십니다(히브리서 4:15; 
베드로전서 2:22).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과 동정녀 탄생이 물리적으로 인과관계
가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죄가 남자에게 있고 동정녀에게는 없
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것은 그분이 성령으로 잉
태된 때문이며, 성경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지상에 사시면서 마귀
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시고 흠 없이 거
룩하게 사셨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3:21). 예수께서 천국 복음 사역을 하시기 전에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에 관한 기록은 예수께서 우리 사람이 겪는 시험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셨음을 밝히시는 말씀입니다(마태복음 4:1∼11). 

예수께서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나신 사실은 예수께서 영원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언하는 사건입니다.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
시에 죄가 없으신 참 사람이시므로 하나님과 사람간에 평화를 이루는 중보자
로서의 자격과 요건을 유일하게 갖추신 분이십니다(고린도후서 5:21). 

천국의 복음을 전하실 뿐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자비하신 삶이, 그리고 그분의 고난의 삶과 죽음
과 부활이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합니다(로마
서 1:3∼4).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사실을 주저 없이 감사함으로 고백합니다.

10.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의 전 생애가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말구유에 나신 일, 
헤롯의 어린
이 학살을 피하여 부모가 아기 예수를 이집트로 피신시킨 일을 비롯하여, 천
국 복음 사역을 하실 때도 머리 둘 곳도 없이 지내신 일,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에게서 질시와 미움을 받으신 일 등이 다 고난의 삶이었습니다(마태복
음 2:1∼23; 8:20). 

예수께서는 특히 생애 마지막에 십자가의 극형을 받아 당신 자신의 몸과 영
혼으로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짊어지셨습니다(이사야 53장). 십자
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갈라디아서 3:13).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단 한번에 드리는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림으
로써 우리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형벌에서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
혜와 의를 입혀 주시고 영원한 삶을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마가복음 10:45).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그분은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찔림을 받고 우리
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셨습니다(이사야서 53:5∼6; 히브리서 9:11∼
15). ‘구속’은 누군가가 본래 노예 대신 값을 지불하고 그 노예를 자유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죄를 지
었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습
니다(로마서 6:23; 5: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는 
길을 첫 사람이 범죄한 때부터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
담과 하와에게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셔서 부끄러움을 덮어주셨습니
다(창세기 3:21;3:10∼11). 죄를 사한다는 구약의 ‘키퍼’라는 말뜻이 ‘덮는
다’입니다.

사람들은 짐승을 희생하여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으
며 죄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
으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분을 가리켜 ‘세
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불렀습니다(요한복음 1:29). 요한계시록에 따
르면 천상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늘 ‘어린양’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요한계시
록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