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와 ‘공생발전’_ 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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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와 ‘공생발전’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

 

 

“구체적인 정책이나 법률안 제정 및 개정 뒤따라야”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을 주장한지 1년이 지났다. 금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생발전’을 들고 나왔다.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이제 막 내딛은 것 같은데 이제는 ‘공생발전’을 제시한 것이다.

 

‘공생발전’의 ‘공생’이라는 의미를 살펴볼 때 ‘공정’과 ‘상생’을 뜻하는 합성어로 보인다. 이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매우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말만 앞세우는 정치가 되지 않도록 실천적 의지를 보여주어야 국민들은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정두언 국회의원이 그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한번 되짚고 가면 좋을 것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들고나올 때 민간인 사찰사건이 터졌다”면서 “총리실 담당자만 처벌하고 누구나 아는 윗선은 수사조차 안 했으며, 심부름하던 담당 행정관은 모처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조사를 마쳤다. 총리실 압수수색은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준 다음에 실시했다. 이걸로 공정사회는 종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철학은 ‘녹색성장’(2008년), ‘친서민’(2009년), ‘공정사회’(2010년)로 국민들에게 요란하게 선전되었지만 그 실천적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 말일 것이다. 결국 금년에 제시한 ‘공생발전’ 역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제 현란한 말과 구호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여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작년에 제시한 ‘공정사회’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제 우리나라에서 ‘공정사회’를 잊어버릴 정도로 공정사회를 이루었는가? 아니면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 어렵게 되었기에 ‘공생발전’을 들고 나온 것인가?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대통령은 ‘공생발전’의 내용으로 윤리경영, 자본의 책임, 생활의 정치, 포용적 성장 등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발전의 양 못지 않게 발전의 질이 중요하다. 기후변화에도 대응하고 생존 기반도 다지는 발전, 격차를 확대하는 게 아니라 줄이는 발전,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리는 성장이 돼야 한다. 서로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며 한 나라의 국가 원수로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요지의 담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공정사회’를 실천하지 않고 ‘공생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자칫 사상누각(沙上樓閣)이요 뜬구름 잡는 격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지 않도록 이것도 놓치지 않고 저것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올바른 것이며,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을 과연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며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물리적 힘과 다양한 현실적 권력일 것이며, 그런 힘과 권력이 정의로 오용되거나 남용되어 서는 안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소리쳐 묻고 대답을 구하고 있지만 막상 정의는 눈에 보이지 않고 대답 없는 메아리만 돌아온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일반 사회뿐 아니라 교회 속에서도 주장되어지고 실천되어져야 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교회의 불미스러운 여러 가지 사태들을 보면서 교회가 공정사회를 위해서 보여줄 모범이 없다는 자괴감에 가슴이 쓰리다. 과연 우리 시대의 교회들이 ‘공정사회’를 위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또한 ‘공생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1300여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패인식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조사의 결과를 보면 청소년의 30%는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돈 많이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청소년들의 76.8%는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대답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은 이제 청소년들에게까지 확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정사회’와 더불어 ‘공생발전’이라는 화두가 과거에 제시한 ‘녹색성장’이나 ‘친서민’과 비슷하게 말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정책이나 법률안의 제정 및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공정사회’를 주장하면서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서 구체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공생발전’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말 잔치로 끝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회도 이런 점에서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럴듯한 감성적 표어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교회가 먼저 ‘공정사회’와 ‘공생발전’을 위한 실천적 행동과 삶을 통하여 우리 사회 앞에 모범적 실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따로 없을 정도로 말로는 완벽하지만 실천이 없을 때 그 공허함은 슬픔을 넘어 분노로 바뀌게 되는 법이다. 돼지 목에 걸어준 진주목걸이가 되지 않도록 말로 주장하기보다는 실천적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