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信賴)를 잃어버린 시대_조석민 목사

0
7

신뢰(信賴)를 잃어버린 시대

|조석민 목사(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불신의 요소 제거하려는 뼈깎는 고통 함께 감수해야” 

신뢰는 한 사회가 존재하는 근본 뿌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에
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소식들, 예를 들면 성인들의 어린이 강제 성추행 사
건, 아버지가 딸자식을 성추행한 사건,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소
식 등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들 잇달아 발생하고 있어

이 세상에 가장 불행한 일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신
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성인들이 연약하고 새싹이 돋듯이 자라나고 있는 어
린이를 돌보며 보호하여 잘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오히
려 짐승처럼 돌변하여 어린이를 성추행하고 생명까지 빼앗아가는 비극적인 
시대가 되고 말았다. 
어린이 성추행범의 대부분이 면식범이란 통계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얼굴을 평소에 잘 알
고 있기에 어린이는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은 것인데, 
말 그대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아버지가 친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 또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처참한 절대적 신뢰
의 붕괴 그 자체이다. 
더욱이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며 보험금을 탐낸 경우도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적 신뢰의 붕괴를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이다. 이 모두가 국가와 사회를 구성
하는 토대이며 신뢰로 이루어진 가족의 견고한 성이 무너진 경우이다.
최근 발생한 백령도 근해에서 우리 해군함정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은 국민
적 비극이다. 이 사건의 발생 시각과 원인을 놓고 군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
하는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뿌리 깊은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감한다. 
군이 천안함 침몰 사고 시각과 관련하여 잦은 말 바꾸기로 이미 신뢰를 잃어
버렸다. 풀리지 않는 의혹과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제는 사고 
원인을 제대로 밝힌다 해도 국민들이 곧이 믿어줄지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안함이 침몰하여 수많은 고귀한 생명이 실종되고, 시신으로 발견된 것도 
슬픔이지만, 이 가슴 
아픈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불신의 검은 
그림자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이런 상황을 만든 배후에는 자주 말을 바
꾼 군의 발표도 문제지만, 신문 방송 기자들의 사건에 대한 사실 보도와 함
께 추측에 의한 분석 보도도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침몰한 천안함의 선체를 인양하면 보다 분명한 원인 등을 알 수 있겠지만, 
인양된 선미(船尾)의 절단면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군의 발표는 또 다시 신뢰
를 잃어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군을 믿고 안전
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이 그 군의 공식적인 발표를 믿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처참한 비극 그 자체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 풍조를 없애려면 모든 면에서 가능한 한 투명성
을 높여야 하고, 정보의 독과점을 해제해야 한다. 하지만 남북의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국가의 안보와 관련된 정보의 무분별한 공개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관련하
여 남북의 상황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남북이 통일되
지 못한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통일은 통일이 되는 그날까
r
지 우리 민족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지상과제이다. 
우리 사회의 불신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약속의 실천이 신뢰의 
작은 나무를 심는 일과 같은 것인데 작은 약속들이 실천되지 않으면서 보다 
큰 약속들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파기되는 상황이기에 불신을 자초하고 있
다. 국민의 상당수가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정
부가 이미 상당 부분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한반도 대운
하에서 비롯된 4대강 개발 문제 및 세종시 수정안 문제,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의 무죄 판결 등이다. 
우리 사회 속에 드리워진 불신의 그림자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이 함께 모여 이룬 신뢰의 공동체가 불신의 공동체로 점차 바뀌어 가는 모습
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런 현상은 얼마 전에 발표된 종교의 신뢰도 조사
에서 발표된 교회의 신뢰도 추락에서 볼 수 있다. 또한 교회의 문제가 세상 
법정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과 그 법정 다툼의 수가 상당한데에서도 찾
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닮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모
인 믿음의 공동체가 서로 불신하고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 또한 성도와 성
도들 사이에 서로 세상 법정에 고소 고발을 하며 교회를 불신의 공동체로 세
상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이 교회의 지도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작은 일들에 대하여 이미 
거짓이 들어나 불신을 경험했거나, 교회의 일들이 투명성과 객관성을 잃어버
린 경우, 정보의 통제와 소통을 위한 대화가 아닌 일방통행식의 의사 전달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뢰의 회복은 우리 사회가 신속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
런 신뢰의 회복은 교회가 먼저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교회는 이 사회 
속에서 신뢰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어야 할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
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릴 때 그 부정적인 효과가 사회에 주
는 영향은 너무나 크다. 세상에서 불신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현실적으로 매
우 어렵다. 하지만 불신의 요소가 되는 많은 것들을 제거하려는 실제적인 노
력과 함께 의심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때 우리 
교회와 사회
는 보다 더 밝은 미래를 내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 유다서 22절은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교훈하
고 있다. 정신과에서 의심은 치료하기 어려운 심각한 병이지만 많은 노력으
로 그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교회가 먼저 신뢰 회복 모범 보이길

의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함께 
신뢰하는 믿음의 공동체와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