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윤리의 가치 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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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단상<15>

기독교 윤리의 가치

조석민 목사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최근에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의 불안정과 최악의 금융 상황은 이
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사고의 여파가 한국뿐
만 아니라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파급 효과가 전문가의 예단
(豫斷)을 불허하는 듯하다. 

세계적 경제대란 몰고 온 미국 금융

지금 지구촌의 모든 구석에서 싫든 좋든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피부로 경험하
고 있는 중이다. 황금만능의 사상과 금융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는 사상이 세계를 제패(制覇)한 듯 했다. 하지만 부의 축적만을 위하여 브레
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달려가듯 신자유주의는 가난한 자를 소외시킨 윤
리 도덕의 부재 속에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미국은 꺼져 가는 경제 불황에 불씨
를 지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지금까지 제시한 경제 
불황의 다
양한 해결책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날마다 눈과 
귀로 확인하게 된다. 윤리 도덕이 부재한 경제 구조 자체를 새롭게 바꾸려
는 대안이 제시되기 전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일 뿐이다. 
한국의 경제 역시 미국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면서 최악의 경제 상황이란 직
격탄을 맞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는 말을 연발한
다. 아직은 우리 경제 상황이 어렵지 않고 위기가 아니어서 얼마든지 극복
할 수 있다는 말로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오히려 위기가 최상의 기회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 뱉으며 경기 부양 정책들을 쏟아놓는다. 
그렇지만 그 정책들은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인 종부세 및 양도소득세의 완
화 또는 폐지, 임직원 연봉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은행 구제를 위
한 자금 지원, 그 동안 엄청난 수익을 낸 건설 회사들의 미분양 아파트 해결
을 위한 국민의 혈세 지원, 투기 금지 지역의 해제 등등 모두 서민들과는 직
접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윤리 도덕의 부재 속에 부의 축적만을 지상 목표로 알고 사는 사람들만을 위
한 정책은 멸망을 향해 꺼져 가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행위
와 같다. 윤리 도
덕이 부재한 경제 구조 속에서 부의 편중으로 인한 경제 양극화의 현상이 심
화(深化)되면 될수록 신자유주의 사상은 종말을 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교훈
했다. 부의 축적만을 위하여 달려가는 인생은 이미 악의 뿌리를 그 속에 깊
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악의 뿌리는 자라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게 악한 열매를 거두게 하며 함께 멸망을 자초(自招)한다. 
악한 열매의 모습은 최근에 일어난 소위 ‘묻지 마 방화 살인 사건’의 희생
자들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되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인 압박 속에 세상을 향
하여 분노하며 자신의 삶을 혐오하여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무차별 살인한 
젊은이를 바라볼 때 망연자실(茫然自失)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분노하며 그 살인자를 향하여 돌을 들어 던지기 전에 윤
리 도덕의 부재 속에 부의 편중을 가져온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구조의 혜택
을 받은 자들은 결코 마음 편하게 함께 돌을 들고 던질 수만은 없을 것이
다. 
윤리와 도덕을 도외시한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구조 속에서 부의 편중(
偏重)
이 만들어낸 경제의 양극화 현상은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다. 
경제 구조가 올바른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없을 때 그 결과는 사회의 모든 
구석에서 다양하게 부정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
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기독교 윤리의 가치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중요한 요소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
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
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7-18)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윤리의 기초는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제자매를 생각하
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본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나만의 배를 만족시키기 위
하여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
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문제가 된 쌀 직불금을 불법으로 신청하여 수령한 사람들
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경제 역시 이대로 흘러간다면 그 멸망의 끝
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암시
하는 것이다. 경제 윤리와 도덕을 상실하고 
자신들의 배만 불리기 위하여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기에 농민들은 피눈물
을 흘리며 절망감 속에 탄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기독교 윤리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여 부의 축적만을 위
해 질주하지 않고 분배와 나눔을 통하여 상생(相生)을 위한 적극적인 몸부림
을 친다면 오히려 생명력을 갖게 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경제 위기 속에
서 기독교 윤리의 가치를 다시금 강조하여 가르치며 교회가 그 가치를 적극
적으로 실천하여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나눔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
할 때 최악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삶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그 
감미로운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세상의 없어질 재물로 땅을 사랑하여 땅을 
산다고 소가 웃다가 입이 찢어질 핑계를 말하지 않고 춥고 배고파 울고 있
는 이웃을 생각하며 기꺼이 그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우리 사회가 되어지
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윤리 가치 상실한 경제의 말로 보여줘

아울러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기독교 윤리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
고 
함께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