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사람으로 사는 것_ 딤전 6:19 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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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125) 

미래의 사람으로 사는 것_ 딤전 6:19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선행은 신자의 멋있는 인격 향상해” 

기독교는 모든 면에서 균형을 보여준다. 특히 신앙과 행위의 관계에서 그렇
다. 기독교에서는 믿음에 대한 강조와 행위에 대한 강조가 서로 충돌하지 않
는다. 둘 중에 어느 하나만을 중시하는 것은 기독교의 길이 아니다. 

믿음과 행위는 충돌하지 않아

그래서 누구는 믿음만 주장했다느니 누구는 행위만 고집했다느니 말하는 것
이나, 누구에게는 행위에 대한 역설이 결핍되었다느니 누구에게는 믿음에 대
한 생각이 부족했다느니 말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발상과 발언은 무식의 소치이다. 어떻게 믿음 없이 행위가 있겠으며, 행위 
없이 믿음이 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어느 누가 행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말
한다고 해서 오해할 것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행위의 가치를 밝힐수록 더
욱 옳은 일이 된다.

것이 사도 바울의 심정이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앞에서 선한 행위, 선한 
사업, 나누어주는 것,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동참하는 것, 이런 일들의 의미
를 아주 강하게 밝혀주었다. 그런데 이제 이 내용을 마치려는 순간에 선행
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놀라운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장래
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선행에 
대한 사도 바울의 교훈을 하나씩 뜯어내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은 선행을 좋은 터라고 부른다. 사실 터라는 표현은 사
도 바울이 여러 차례 사용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대단히 깊은 신학을 설명
하고자 할 때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터가 된다고 
말할 때(고전 3:10-11),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워진다고 말할 
때(엡 2:20)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렇게 신학적으로 중요한 말을 사
도 바울이 선행의 의미를 밝힐 때도 사용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터는 받쳐주는 기반이며 움직이는 반경이다. 터가 있을 때 지지의 기반을 얻
고 행동의 영역을 얻는다. 선행은 신자의 고상한 품격을 드높이는 토대이

n며, 신자의 풍요한 활동을 넓히는 터전이다. 선행을 발판으로 삼아 신자는 
멋있는 인격을 향상시킬 수 있고, 선행을 울타리로 삼아 신자는 뽐내는 생활
을 확장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은 선행은 미래의 보장이 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
이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미래
에 대한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다양한 투자를 한다. 적금을 들고, 보험을 붓
고, 투기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진정한 미래보장이 되지 않는다. 좀
과 녹이 해하며 도둑과 사기꾼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낡아지지 않
는 하늘의 주머니를 만들라고 일러주셨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구제이
다(눅 12:33). 진정으로 미래를 보장받기 원한다면 선행에 참여하라는 것이
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하는 미래는 함축적으로 내세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렇게 볼 때 내세는 선행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선행은 믿음의 표현이
며, 믿음은 선행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런 선행은 내세를 보장받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 비유가 보여주듯이 종말심판
에서 행위를 따진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마 25:31-46). 심판의 보좌 
앞에서 자기의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
해야 할 것이다(계 20:12).
이런 의미에서 선행은 참된 생명을 취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
이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은 선행이 참된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참
된 생명이란 표현은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경험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진
정한 생명(영생)을 획득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후자가 우세하지만 전자
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선행으로 신자는 현실적으로는 최고의 삶을 누리
는 효과를 얻으며 미래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효과를 얻는다. 

선행은 영원한 생명 보장하는 증표

선행은 신자를 안정된 사람으로 만들어주며, 미래의 사람으로 살게 하며, 진
정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게 한다. 이 사실을 몰랐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
만, 이 말씀을 배우면서도 이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처럼 큰 어리석음이 있
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