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48)-목회보다 앞서는 것 (딤전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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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3:4-5) 목회보다 앞서는 것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올해 초여름 군에 입대한 우리 큰 아이를 생각한다. 스물 두 해를 곱게 자
란 아들은 논산훈련소로 떠나면서 우리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이 그
러나 결국 우리의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작은 카드를 한 장 남겨놓았다. “내
가 믿는 것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주신 것인지… 
지금 저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어머니의 사랑 때문인지… 아버지와 어머니
는 정말 멋진 모델이셨어요. 언젠가는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본보기가 어떤 것
이었는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제게 부모님 같은 부
모님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건강하게 갔다오겠습니다”.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다지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작은 아
이에게는 그래도 감정을 많이 자제하였지만 큰 아이를 기를 때는 정말 전형적
으로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가끔 큰 아이는 동생의 
느려터진 
행동을 구박할 때면 아버지한테 매를 덜 맞아서 그렇다고 소리칠 정
도로 말이다. 이제 다 성장한 아이들을 바라면서 그들의 마음 속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의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적지 않게 
미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모두 무지막지한 아버지의 교훈을 멀리
하지 않고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란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낀다. 

사도 바울은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는 것보다 자기의 집을 다스
리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5절). 이것은 목회보다 제가 (齊家)가 우
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뜻은 목회가 가정에서부터 시
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특히 초기기독교처럼 중추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정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자기의 집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돌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대기독교라고 해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
다. 우
리는 주위에서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목회에 실패한 목회자들
의 사례를 얼마든지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조금 심하게 역으로 
말해서 목회의 실패는 제가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
다. 목회자가 자신의 가정사에 집착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드려도 목회에 
문제가 되고 자신의 가정사를 소홀히 해서 아무런 시간을 드리지 않아도 목회
에 문제가 된다. 목회의 왕도 (王道)가운데 하나는 제가와 관련이 있는 것이
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실패하고 교회에서는 성공했다는 주장은 결코 정당
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자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것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자
녀교육을 제시한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4절). 사도 바울에 의하면 목회에서 자녀교육의 성패
는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목회자의 자녀가 신앙의 도리에
서 순종의 자세를 보이면 목회가 흥하지만 불순종의 자세를 보이면 목회가 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의중은 이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
니다. 사도 
바울의 진정한 의도는 자녀교육의 잘됨과 못됨을 놓고 목회자의 
자격여부까지 묻는 것이다. 목회의 사활이 자녀교육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
은 언뜻 들으면 지나친 감이 있지 않은가 반문하겠지만 구약의 제사장들이나 
선지자들에 관한 이야기만을 슬쩍 들쳐봐도 어렵지 않게 납득이 된다.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가 가정을 잘 다스리
는 것, 특히 자녀를 잘 교육하는 것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되고 스스로 삶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단정함으로” (4절)
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8절과 11절을 참조하라). 삶에 단정한 목회자가 자
녀를 바로 교육하고 가정을 바로 다스린다. 그러므로 목회보다 제가 (齊家)
가 앞서고, 제가보다 수신 (修身)이 앞선다. 이것이 목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