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무식은 질병이다. 무식이란 것은 단순히 지적인 부족이나 결핍의 상태를 의
미하지 않는다. 만일에 누군가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고 무엇을 행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면 그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총명한 사람이다. 무
식은 통제할 수 없는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된다. 무식으로부터 편견에 사로잡
힌 말과 고집으로 얽혀진 삶이 나온다. 무식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
고 여겨 다른 사람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충고를 멀리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무식은 무질서를 유발시킨다.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교
회의 여성도들 가운데 몇 명이 이런 무질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게
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였다 (딤전 5:13).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여
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딤전 2:11)고 권면하게 되었던 것이
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여자에게 배움은 둘째 자리로 밀려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배움을 통하여 여자의 멋에 바탕이 되는 하나님 경외를 얻을 수 있
기 때문이다. 배움은 경건을 태동시킨다. 그래서 사실상 배움은 여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필수적으로 배움에 참여해야 한다. 사
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7)고 말했
을 때나, 자녀나 손자들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
우라” (딤전 5:4)고 말했을 때, 배움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천명하
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사도 바울이 여자들에게 배울 것을 요구하는 것
은 잘못하면 진리를 알지도 못한 채 가르치려 들거나 남자를 주관하려는 오류
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이런 잘못에 빠지는 것
을 허락하지 않는다 (딤전 2:12).
사도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창조와 타락의 조망에서 설정한다. 창조
에 있어서는 아담이 하와보다 먼저이며, 타락에 있어서는 하와가 아담보다 먼
저이다 (딤전 2:13-14). 사도 바울은 이 단락에서 여자에게 권면
을 주면서도
남자의 의무와 여자의 의무를 공정하게 진술한다. 사도 바울은 남자는 우위
에 있으니 무조건 여자를 지배하라고 말하지도 않으며 여자는 하위에 있으니
무조건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사도 바울
의 진술은 매우 공정하다. 남자는 먼저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를 선도해
야 할 의무가 있고, 여자는 먼저 꼬임을 당했기 때문에 남자에게 지도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여자는 먼저 지음받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자는 먼저 꼬임받은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렇게 공정한 진술을 기반으로 하여 여자의 삶에 관하여 지시하고 있다. “여자
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딤전 2:11).
배움은 여자의 아름다운 삶이다. 사도 바울은 여자의 배움에 두 가지 방식
이 곁들여야 한다고 일러준다. 첫째는 “조용히 배우라”는 것이다. 여자는 배
우기 위하여 조용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조용함”이라는 말은 이미 앞에서
한번 사용된 적이 있다. 왕과 고관들을 위한 기도는 “고요하고 평안한 (조용
한) 생활” (딤전 2:2)을 하
기 위함이다. 이 말에서 “조용함”이 무엇을 의미하
는지 잘 나타난다. “조용함”은 바쁘거나 시끄럽지 않은 것이다. “조용함”은
한가롭고 여유있는 것이다. 둘째는 “일절 순종함으로 배우라”는 것이다. 여자
의 배움에는 순종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순종함”이라는 말은 조금 뒤에서 다
시 사용될 것이다. 감독은 “자녀들로 복종케 (순종케) 하는 자” (딤전 3:4)이
다. 이로부터 “순종함”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순
종하는 자세를 가지듯이 여자는 가르치는 자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
다. 이렇게 조용함과 순종함으로 진리를 배울 때 여자는 무식한 삶에서 벗어
나게 된다. 남자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시대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여자들이 배워야 하는 것도 모든 시대에 해당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