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32)-돈 될 것 없는 신분 (딤전 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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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될 것 없는 신분 (딤전 2:7b)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전도사 시절이었다. 어느 날 독일문학을 전공하는 절친한 친구 (나의 첫 번
째 헬라어 성경은 그가 선물한 것이었다)와 둘이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화
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뭔가 멋진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서 괴테를 읽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다 침
까지 튀어가면서 괴테를 읽는 이유를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좋은 설교를 하
려면 문학을 비롯하여 다방면에 학식과 조예가 있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라
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저를 탁자 위에 내려놓
고 자세를 바로 잡더니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를 쳤다. “내가 설교시간에 너한
테 듣고 싶은 것은 괴테가 아니라 성경이야”. 이제는 꽤 오래된 대화이지만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는 친구의 음성은 나의 신분을 깨우치게 하는 천
둥소리였다. 그렇다, 나는 괴테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말
하는 사람
이다! 

사도 바울은 피를 토하듯이 목청을 돋구어 자신의 신분에 관하여 진실을 말
하고 있다.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
이 아니라” (딤전 2:7b). 사도 바울의 자기의식 한가운데는 돈 될 것이라고
는 하나도 없는 직분에 대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일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
을 세우신 것은 이 신분 때문이었고, 사도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자랑스러운 
것도 이 신분 때문이었으며,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사랑하는 것도 이 신분 때
문이었다. 이 신분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신분 때문에 사도 
바울은 환난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굶주림과 헐벗음도 무서워하지 않으
며 칭찬과 영광을 즐거워하지 않고 손해와 빈곤 앞에서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요 사도요 교사일 뿐이지 그 외에 아무 것도 아니
다! 

얼마 전 남쪽 어느 작은 도시에 성경을 가르치기 위하여 내려갔을 때 요즘
은 사람들이 신학대학과 같이 공인된 기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수여하지 

않으면 이런 성경교육장소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서 억장이 무
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성경을 배우는 것보다 자격증을 얻는 것
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긴 성도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심지어 
목사들까지 무슨 박사니 무슨 회장이니 하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스
레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총회장이니 위원장이니 이사장이니 하는 명
칭을 지니고 있을 때 성도들로부터 더 존경을 받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
래서 이런 목사들은 목사 외의 신분을 얻기 위하여 기를 쓰고 별별 치사한 방
법과 너절한 수단을 다 동원한다. 이것은 우리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렇다, 
우리는 실없는 성도들과 천박한 목사들에 에워싸여 스스로 몰락하고 있다! 

제대로 된 성도가 목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며, 제대로 된 목사가 성도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다. 바른 성도 치고 목사의 다른 신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고, 바른 목
사 치고 성도의 다른 자격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만일 그런 성도와 
목사가 있다면 그것은 성도도 아니며 목사
도 아니다. 우리가 몰락하는 중대
한 원인은 성도와 목사라는 신분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리고 성도 아닌 다
른 신분, 목사 아닌 다른 신분을 향해서 곁눈질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비
록 이것이 아무런 돈도 되지 않는 신분이라 할지라도 이 신분이야말로 우리
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프라이드가 아닌가 (고전 4:1; 벧전 2:9). 
우리가 이 몰락의 내리막길에서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고 다시 오르막길로 돌
아설 수 있는 방법은 이 프라이드를 회복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 밖에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증
거하기 위하여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도 바울의 자랑이 
우리의 것이 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회복의 소망이 없다. 그래서 내가 전
하고 싶은 것은 괴테가 아니라 예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