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31)-나(딤전 2: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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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딤전 2:7a)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그는 바울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바울은 작은 체구에 벗겨진 머리와 구부정한 다
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양 눈썹은 서로 붙을 것처럼 짙은 모습을 하였고 코는 약간 
툭 튀어나온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초대교회 시대의 어느 문서에 나오는 사
도 바울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다. 성경 밖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지는 의문스럽지만, 사도 바울 스스로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을 미
루어 볼 때 조금은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외모로만 보자면 사도 바울에게서 별로 건
질 것이 없다. 사실상 사도 바울은 육체에 박혀있는 사탄의 가시로 말미암아 (고후 
12:7) 몸이 매우 약하여 (갈 4:13) 추측하건대 안질이든 뭐든 (갈 4:15) 어떤 질병으로 
고생을 했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 대적자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고 또한 자기의 입으
로도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말이 어눌하고 시원하지 않았다 (고후 10:10; 11:6). 게

가 내면적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은 매우 심약해서 사람들 앞에 서면 약해지고 두려워하
며 떨었다 (고전 2:3). 오죽하면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자랑할 것이라고는 약한 것 외
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을까 (고후 11:30; 12:5). 

그러나 왜소하고 흉측한 외모와 병약하고 초췌한 신체와 그리고 심약하고 소심한 마음
을 지니고 있는 사도 바울은 놀랍게도 지금 자기를 대단히 힘있게 드러내고 있다. “내
가…” (딤전 2:7. 본문에는 “나”를 강조하는 대명사 ego가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나” (ego)를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나”를 서슴지 않
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나”를 거리낌이나 주저
함이 없이 표명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첫째로 그것은 사도 바울이 자아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자아는 그가 능동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능
력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는 “내가 세움을 입은 것은… “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사도 바울의 “나”는 
수동적 자
아이다. 사도 바울은 본래 스스로는 획득할 수 없는 직책을 하나님에 의하여 얻게 되었
다. 사도 바울의 자아의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둘째로 사도 바울이 자아를 이렇게 강하게 드러내는 까닭은 
자아의 목적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자아는 자신을 목적으로 하
지 않는다. 사도 바울의 존재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를 위
하여 내가 세움을 입은 것은… “이라고 말한다. 바울의 자아는 목적적 자아이다. 바울
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의 구속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목적이 아니라면 밥을 먹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목적을 위하
는 인생이라면 굶주리고 헐벗어도, 잠을 자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해도 영광스럽고 가치
가 있다. 바울의 자아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고전 10:31). 그러므로 사도 바울
은 말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
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롬 14:7-8).

사도 바울의 자아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속은혜에 결부되고, 목적적으로는 하나
님의 구속사업을 지향한다. 사도 바울의 에고 (ego)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비로소 
존재하는 자아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디어 활동하는 자아이다. 하나님의 은혜
는 자아의 의미를 설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은 자아의 가치를 설정한다. 이 둘을 한 마디
로 묶어서 말하자면 사도 바울의 자아는 종속적인 자아이다. 사도 바울의 자아는 뒤쪽으
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종속되고 앞쪽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지금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의하며 하나님을 위하는 종속적 “나”를 언급하는 것을 조
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