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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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교수의 현대신학해설

종교 다원주의 (1)

종교 다원주의나 타종교간의 대화 문제는 최근에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포스
트모던 시대에 들어와서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전에는 
타종교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느냐 혹은 어떤 것이 다르고 어떤 것이 비슷하
냐 식의 생각을 해왔다. 즉 한 쪽 종교 입장에서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
나 종교 다원주의에서는 한 쪽 입장에서 다른 입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들 입장에서 자신의 종교만을 보는 것을 요구한다. 즉 다른 종교를 판단할 권
리가 없다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모든 종교들의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종교의 관점에서 다른 종교들을 보는 것은 스스로 우월성 내지는 절대성
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다른 종교들은 그 한 종교처럼 돼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그것은 바로 다원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포스트 모던이즘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한가지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
는 것이다. 또한 텍스트에 내재하는 고유의 의미를 부정한다. 어떤 
초-설화적
(meta- narrative) 의미를 부정한다. 이러한 특징은 바로 종교 다원주의에도 
연결이 된다. 한 종교의 절대적 진리란 있을 수 없고, 한 종교의 고유의 의미
란 없고, 다른 종교들이 따라야 할 초 설화적 혹은 초 신학적 가르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유일성 혹은 하나님 되심은 종교 
다원주의의 No. 1 敵인 것이다. 한마디로 다원주의는 어떤 동질성(consensus)
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dissensus)을 인정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tolerance)을 주창하는 것이 종교 다원주의인데 이 관용이
란 한 쪽 편에서 다른 쪽을 관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관용된
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절대적 진리로 관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
어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알라가 참 신이라는 이슬람의 가
르침은 둘 다 관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두 주장은 절대적 진리
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 다원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다원주의라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일종의 교조주의적 색채가 있다고 
하겠다.

종교 다원주의 
대표 주자인 죤 힉(John Hick)은 기독교의 성육신의 교리야말
로 다원주의의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모든 종교가 궁
극적 실재 (ultimate reality), 즉 신을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문화적 
역사적 배경만 달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모든 종교가 정당하
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예수-중심의 모델에서 하나님-중심의 모델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윌리암 스미스 (William C. Smith)는 진리란 객관
적이 아니라고 한다. 더욱이 진리란 명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
어, 하나님은 어떤 객관적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란 의미는 단지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
는 주장하기를 ‘종교의 진리 혹은 실재가 무슨 뜻이었냐’ 라는 역사적 질문
은 현재의 진리와 실재에 대한 신학적 질문과 다르다고 한다. 즉 역사적 질문
을 버리게 되면 참다운 종교 다원주의가 성립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한다. 그
는 또 주장하기를 만약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났다면 그것은 하나
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게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트레이시
(David Tracy)는 주장하기를 인간의 모든 지식은 제한적이며 다각적
(perspectival)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대화는 이러한 제한적이고 다각적인 특
징을 인지한 포스트모던 지식 소통이며 취득 방법이고 대화는 언어와 역사의 
애매성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종교가 대
화에 있어서 우월한 입장에 있던지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을 수 없다는 것이
다. 종교 다원주의를 실재로 받아들이고 그 실재를 텍스트로 놓고 대화를 해
석의 방편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종교의 해석을 절대적인 것으
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웨슬리 아리아라자(S. Wesley Ariarajah)는 주
장하기를 기독교를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게 보는 것은 영적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그는 배타적 성경 구절들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절대적 의미
의 진리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니, 단순히 바울이나 성경이 그렇게 
말했다고 예수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
이 믿는 기준에 의해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절대적 주장은 단순히 상대적일 뿐
이라고 아리아라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 다원주의가 풀어야 할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여러 종교가 
어떻게 다 정당 혹은 타당(legitimate)할 수 있는가? 즉 다원성을 위하여 각 
개체성 (particularity)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둘째로 어떤 개체성이 주어
진다고 해도 상호 연관성이(consensus)가 없으면 상대주의에 빠지게 될 수 있
지 않은가? 즉 서로간의 아무런 관계없이 개인적 특수성만을 가지면 페쇄적
이 될 수 있고, 아니면 너도 맞고 나도 맞고 하는 무관심적 상대주의에 빠지
게 된다. 이러한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절대적 기준이나 추구하
는 바가 있어야 하거나, 아니면 모든 종교가 중립적인 열림(openness)을 순수
하게 유지해야 한다. 다원주의는 결코 어떤 절대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 그러나 어떤 순수한 열림이 가능한 것인지 의심할 만하다. 왜냐면 그 열
림을 유지하는 데는 어떤 기준이나 조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