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불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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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1) 
불트만은 바르트와 틸리히의 동시대 사람으로 당시 이들 못지 않게 신학적 명
성을 날렸다. 그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우리는 실존주의 철학을 알
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는 마부르그 대학에서 같이 교수로 일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M. Heidegger)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불트만은 조
직 신학자라기 보다는 신약성경학자였다. 우리는 불트만하면 양식 비평(form 
criticism)과 ‘비신화화'(dymythologization)를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것들
이 바로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한 그의 성경 해석 방법인 것이다. 실존주의의 
중요한 한 작업은 바로 “‘존재'(Sein)를 어떻게 규정하며 그 존재를 위협하
는 것들(비존재, 고뇌, 공포, 죽음 등)로 어떻게 벗어나 진정한
(authentisch) 존재가 되느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마
다 각기 다른 방법론을 취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실존이란 어떤 ‘객관
화'(objectified)된 것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개인의 결단에 달려있
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결단’ 혹은 ‘선택’이란 단순한 의지적 행
위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실존의 증거요 근원이요 주체인 것이다. 이러한 실
존주의 사상이 바로 불트만 신학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신학에
도 칸트와 헤겔의 영향이 젖어있기도 하다.

불트만 당시 이미 신학계에서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대한 연구
가 진행되고 있었다. 역사적 예수란 복음서의 내용들 이면에 존재했던 예수라
는 역사적 인물을 의미한다. 즉 복음의 내용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가 주체이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트만 역시 이러한 역
사적 예수의 개념을 기초로 그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신앙의 중심되는 
것은 예수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 (kerygma), 즉 메시지
라고 주장했다. 신약성경도 초대교회의 선포를 기록한 문서로서 역사적 예수
에 대한 사실들 보다는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
한다. 이것은 바로 실존주의적 주장으로 어떤 객관화된 역사적 모습들이 
개인
(실존)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케리그마를 통
한 神과의 인격적 조우(encounter)야 말로 참된 신앙의 모습이라고 믿었던 것
이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그는 양식 비평(Form criticism)을 받아
들여 발전시킨 것이다.

양식비평이란 어떤 문서가 형성됨에 있어서 여러 구전(oral traditions)들
이 전해졌다고 보고 그 구전들을 여러 양식(forms)으로 분류하여 원래의 상황
(Sitz)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을 통해 불트만은 지금의 복음서
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복음서 이 前의 복음”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초대 교회 당시 예수에 관한 많은 구전들과 이야기들이 
존재했었고, 교회라는 공동체가 이러한 것들을 그들 의도대로 편집했다고 주
장한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오는 “즉시,” “다음날,” “길 가실때에” 등의 
말들은 여러 다른 구전 자료들을 서로 잇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러
한 초대 교회의 인위적인 편집을 해체하여 이 기록에 들어있는 구전의 원 형
태를 찾아 최대 한도로 최초의 전승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 또한 복음
서 안에 있는 문서, 시간, 장소 등의 표시는 비역사적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
므로 이러한 것들은 다 떼어내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복음서를 여러 가지 
범주들로 나눈다. 예를 들어, 기적 이야기, 예언, 비유, 명언 등으로 나누어 
복음서내에 어떤 불연속성과 불일치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범주들을 근거로 
전승(history of tradition)에 있어서 어떤 것이 원래의 전승이고, 어떤 것
이 이차적 전승이고,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 이야기인가를 나눈
다. 그 중에 어떤 것이 예수의 원래의 가르침과 제일 가까운 것인가를 정하
는 것이다. 그러나 불트만은 주장하기를 복음서를 통해서는 사실 역사적 예
수 자신에 관해 거의 알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알수 없다고 해서 복음서는 전혀 가
치가 없고 기독교 신앙이 파괴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케리그마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실존주의적 체계에서
는 한 개인의 결단 혹은 선택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역사화된, 즉 객관화된 
자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결단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무엇
을 선택했
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이든 비역사적이
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결단했던 그 메시지가 
우리에게 이제 어떤 결단을 불러일으키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역사화
되고 객관화된 것을 의지하고 신앙하는 것은 ‘진정한 존재의 모습’이 아닌 것
이다.

이러한 모습이 참된 신앙의 모습이라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불트만의 
신앙관에는 어떤 역사성이 전혀 결여되는 것이 아니다. 불트만 역시 바르트처
럼 두 종류의 역사를 말한다(Geschichte와 Historie). 그는 어떤 합리적인 증
명에 근거하는 것은 진정한 실존이 아니라고 한다. 초역사(Geschichte)는 현
재 지금 계속 발생되는 사건들로 이룬다고 한다. 십자가의 죽음, 부활, 재림
은 우리가 설교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계속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
는 일반적 역사의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비록 예수에 대해서 아는 바
가 많이 없지만 그의 삶은 메시지의 전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 중요
한 것은 예수가 ‘우리 믿음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이지 예수가 ‘어떤 
사람이
냐’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