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소망을 헤아리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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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세기의 신학과 영향력 있는 교회들이 근래에 들어서 국내에서 
어떤 영향력을 소망을 주고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
다. 우리 한국의 근대화과정과 현대국가 건설 과정에서 볼 때, 교회는 민족
의 소망이요, 등불이었다.일제하의 일은 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국민들의 
열렬한 소망이던 군사 독재에서의 민주화의 염원을 위해 박해 속에도 활동한 
사람들은 주로 교회에 관계된 실천가들이었다. 따라서 민주화의 과정에서 업
적을 쌓은 분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고, 국민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문제는 
급진적인 민중 신학과 로마 가톨릭의 해방신학이 서로 나름대로의 현실참여
를 부르짖으면서, 한국 민주화의 과정에서 고난당한 자들과 옥에 갖힌 자들
을 돌보았고, 세례요한의 외침을 던진 대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에 선도적 역할
을 감당하였으나 복음주의 혹은 보수주의 교회는 정치적 보수임을 자처하는 
동안에 민주화 과정에서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또 하나는 통일 의식을 국민 
의식으로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복
음주의 교회와 신학은 주도권을 잃어버렸
다. 더구나, 고 문익환 목사의 돌연한 북한 방문으로, 젊은이들 사이에는 영
웅주의적인 통일의 환상을 선망하는 분위기를 낳았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
어서고서야 한국 복음주의 교회들은 북한 문제와 통일의 과제를 선교적 중심
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통일을 말하는 것은 이
데올로기의 시대에 매우 위험한 인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그동안 복음주
의 교회들의 해외 선교는 놀라운 업적과 함께, 갑작스런 선교 열풍으로 그 부
작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쌓이게 되었다. 선교사와 본국 교회의 상호 불
신, 선교지 내에서 국내 선교사들끼리 영역 갈등, 주도권 다툼, 국내 선교 경
험 미숙에서 오는 시행착오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선교는 지상 명령이요, 
한국 교회의 마땅한 사명으로 여겼다.통일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해야할 
과제는 일부 진보 정치인들의 주장이었지, 복음주의 교회의 핵심적인 기도와 
선교의 주제가 되지 못했었다. 방법도 없고, 정보도 없고, 공연한 오해를 불
러일으킬 소지가 많았다. 따라서 국민적인 열망을 신앙으로 이끌어 가면서 대
안을 
제시하지 못한데서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반면에 급진 신학의 대안 논의
와 활발한 접촉은 괄목할 만했다.1)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낸 주님의 말씀
을 상고하여 볼 때에 오늘의 한국 사회는 한국 교회가 끌어안고 가야 할 공통
의 십자가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
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7)1990년대 이후로 각종 시민 운동, 환경 운동과 윤리 운동
이 일어나고 있다. 개혁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지역사회
에 파고들어야 한다.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로서 그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문제에 파고들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이 민주화와 인권 운
동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정치 이념화하고, 행동 강령에만 몰입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강단이 정치 강연이나, 이데올로기의 전유물로 농락 당한 
경우를 답습하지 말고, 삶에서 고민하는 성도들의 문제를 끓어 안아야 한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이제 교회로 하여금 민족의 희망과 비젼을 제시하는 살
아 움직이며, 생명력있는 예배와 신앙교육의 기능을 
통해서, 목회자들과 성도
들의 신앙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건전한 가치관을 민족에게 확산시켜야 한다. 
통일, 교육, 범죄 예방, 장애인 후원, 환경 파수, 공명선거, 교통 대책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각종 시민 운동 속으로 뛰어들어서 교회와 목회자들의 
건전한 의식을 설교를 통해, 예배와 행사를 통해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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