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아이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궁산은 동네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해서 활 뫼(弓山)라
고 합니다. 동네 앞에는 일제 시대 때 둑을 막아서 형성된 커다란 저수지가
있고, 동네 뒤에는 활처럼 산이 동네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습도
가 많은 날은 안개가 자주 끼었습니다.
여기 궁산에서 태어난 서진이는 초등학생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만 6살이
지만 형과 누나가 있어 잘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학교가 면 소재지에 있어서
스쿨버스가 제일 먼저 이곳 궁산에 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은 항상 큰소리
가 납니다.
“일어나라”, “세수해라”.
“빨리 밥 먹어라”, “옷 입어라…”
서진이는 아직 습관이 안돼서 항상 늦는 바람에 아침에는 늘 바쁘게 됩니다.
그래도 빠짐없이 학교를 가는 것이 대견스럽다고 할까요! 사실, 집에 있는 것
보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동네에는 저와
놀
아줄 친구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시간에 방안에서 뭉그적대다가도 일단 현관문을 나서면, 앞서 가는 형과
누나를 잡으려고 잽싸게 나섭니다.
그날도 예전처럼 신발을 신기가 바쁘게 현관을 나서면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그런데, 잠시 후에 서진이가 풀이 죽어 돌아왔습니다.
“너 왜 안 가니?”
“저~기…”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며 작은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나는, 서진이의 손목을
잡고 밖에 나가 살펴보았습니다.
“아~하~”
알고 보니 안개가 잔뜩 끼어 전방 백보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모퉁이를 돌아가는 형과 누나를 잡으려고 달음박질할 텐데 안개로 인하여 보
이지 앉자 겁을 내고 돌아온 것입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서진아?”
“지금 안개가 끼어서 안보이니까 그러지, 저 앞에 분명히 형과 누나가 걸어
가고 있단다. 저 만큼 가면은 보일 거야, 걱정말고 어서 가 봐라.”
그때서야 용기를 얻었는지 안개 속을 헤치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제 서진이
는 알았을 것입니다.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여도
그래도 가면, 가는 만큼 보
인다는 것을….
서진이의 이름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벽 서(曙), 나아갈 진(進), 새벽에 진
통이 와서 고창 산부인과 병원에 도착한 지 5분만에 세상에 나와 버렸습니
다. 그래서, 새벽에 나아가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어찌 보면 안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일을 모르기에 더
욱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
여 돈벌이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리석게 끌려가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렇
지만, 안개로 앞이 안 보여도 가야할 길이 분명 있다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 알지 못해도, 다 볼 수 없어도 가면 가는 만큼 알게 되고 보게 되는 것입
니다. 가다보면 실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갈 때만이 발전이 있
고 인생의 발자취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농촌을 떠나버린, 그리고 아이들이 귀한 삭막한(?)
이 농촌 지역에 내려와서 거한 지 9년이 되어갑니다. 농촌에서 많은 영혼들
을 구원하고 큰 목회를 해서 성공(?) 하고자 하는 포부도 있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작은 꿈, 확신이 있었습
니다. 이 농촌 사회에서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음받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
다.
오년 간의 교회와 목사관 건축을 하면서 주위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이용했습
니다.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서 있는 그대로 사용하려고 노력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 생각보다 훨씬 잘 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전공을 뭘 했는지 물어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다만, 열심
히 하다보니 된 것입니다. 생각치 않던 지혜, 생각치 않던 재료들… 포기하
지 않고 인내하면서 가다보니 된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명 땅콩박사로 불렸던 조우지 워
싱턴 카아바입니다. 내가 군대생활 중에 책으로 만났던 인물입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 주저앉지도 말고 멀거니 서 있지도 말자.
누구에게든 할 일이 너무도 많으니라.
혹 어떤 사람들처럼 크게 성공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내게는 한 가지 재간이 있으니,
그 재간을 갈고 닦고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