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초상), 과연 인정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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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초상), 과연 인정할 수 있는가?

소위 ‘성화’ 또는 ‘성물’이라고 하는 것은 천주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
이 아니다. 어느새 개신교 교회와 성도들 가정에도 여러 모양으로 파고 들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대해 피터 반스의 “예수를 바라보자”(Seeing Jesus)
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했다.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
자 주>

피터 반스(Peter Barnes) 글, 이대우 옮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믿음으로 살며, 보는 것으로 살지 않는다(고후 
5:7) 우리는 천국을 본 일이 없고, 그리스도를 본 일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
도인들은 마치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고후 3:18). 우리
는 또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하여 앞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 이
유는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
니”(요일 3:2)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일은 그가 먼저 우리에게 나타나셔야 되는 것이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그
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을 확신해 가며 살아야 한다. 

17세기에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은 두 가지 방법이 서로 대조가 됨을 다
음과 같이 말하였다. “로마 교회가 말하기를 ‘신앙을 얻기 위하여 십자가의 
형상과 또 다른 그리스도의 형상을 직접 눈으로 보며,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
암아 바라보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이다’라고 믿으며, 이것이 복음에서 나타
나며, 다른 곳에서는 올 수 가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림이나 형상을 사
용하면 사용할수록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방법이 성경에서 멀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하여서는 그의 말씀인 성경말씀에 입
각한 명료한 설교를 하는 데에서만 온다. 갈라디아서에서 징계하는 말씀을 사
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
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1). 

사도 바울이 십자가상에 죽어 있는 그리스도의 그림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임
으로 사람들이 믿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반면에 바울은 성령께서 안
수하심으로, 그 설교가 마치 말로 된 그림처럼 된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가 
비유로 말하기를 ‘내가 설교의 말씀으로 그린 그림보다 더 선명하고 확실하
게 색을 써서 그릴 그림이 없다. 여러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장 미
련하게도 그림에 매혹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설교에서 현혹되어 있는 부분이다. 강단에는 이단이 우
글거리며, 미신과 막연한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설교에 나오는 끝없는 논쟁
이 끼치는 영향을 전혀 볼 수 가 없다. 이들 설교는 마음의 죄를 깨닫지도 못
하고, 또 마음을 상하게 하지도 못한다. 어떻게 보든 간에 그들의 설교가 ‘은
혜의 복음을 그린 선명한 그림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세계는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오로지 큰 경종을 울려야만 그들
이 깨어날 수 있다. 타락한 교회를 소생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하늘에서 받는 
감격을 가지고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기름 부어 교회의 부흥을 계획하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어떤 다른 방법을 통
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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