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미덕
[그리스도인의 미덕, 톰 라이트, 포이에마, 2010년, 480쪽]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chochuseok@hanmail.net >
폭력 사회조차도 그들 나름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의리가 그것이다. 의리가 무너지면 그들의 조직도 와해되고 만다. 배신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 그들은 이러한 상황이 초래하지 않게 하려고 의리를 강요한다. 사회에 기생하는 폭력 단체라도 그 조직이 유지되려면 의리라는 게 필요하기 마련이고 조직원들의 몸에 의리는 익숙한 것이 되어야 한다.
저자인 톰 라이트는 미덕의 문제를 다룬다. 미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선(善)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길러진 성품이다. 다시 말해서 제1 천성이 아니라 제2 천성이라고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어떤 필요한 일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 바로 미덕이다. 예컨대 누군가 실족해서 철로에 떨어졌는데 몸을 사리지 않고 진입하는 전동차로부터 그를 구해내는 용기나 희생정신 같은 게 미덕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미덕은 일반 미덕이 아니라 기독교적 미덕이다. 기독교적 미덕은 영웅사회나 귀족사회나 시민사회나 국가사회와 관련된 게 아니다. 영웅사회에서는 용기가, 민족사회에서는 애국심이, 시민사회에서는 관용이나 희생이, 조선시대의 유교 사회에서는 충효가 중요한 미덕이었다.
그러면 기독교적 미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바울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용기나 정의나 절제와 같은 공동체의 미덕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영웅사회에 필요한 미덕이었다. 한 국가의 정치나 전쟁의 선두에 서게 할 위대한 영웅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미덕은 그런 게 아니다.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덕목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성령의 열매라는 공동체적 미덕을 제시한다. 이러한 미덕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강점을 지닌 것들이어서 교회를 세상과 구별시켜 준다. 그것들은 신자들의 몸에 밴 익숙한 것이 되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이런 미덕들이 자기 자신과 교회 안에 희미하거나 없다면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서기 어렵다. 이름뿐인 교회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기독교의 주요한 세 가지 덕목으로 간주되어 온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시민사회나 국가사회나 회사와 같은 조직사회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시민사회나 국가사회나 기업체는 그런 것들로 세워질 수가 없다. 다른 덕목이 필요한 것이다. 관용이나 애국심이나 성실성 같은 덕목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런 것들로 세워지거나 채워질 수가 없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덕목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처럼 미덕이란 그 사회를 결정하고 규정하는 본질적 내용인 까닭에 각기 독특한 강점을 갖게 된다.
덕스러운 사람을 놓고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가 다른 관점을 보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전자는 위대한 행위를 하고 박수갈채를 받는 세계를 활보하는 도덕적인 거인 곧 영웅의 비전을 제시한 반면에, 후자는 사랑이 많고 관대한 성품을 가졌고 사람들의 이목을 자기에게 집중시키지 않는 겸손한 자의 비전을 제시한다. 전자는 인간과 세상 나라가 그 중심에 있지만 후자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인간상을 충만히 드러냈다. 그러한 인간상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왕 같은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달하고 섬김과 봉사와 사명 수행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중개할 뿐 아니라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드리는 기쁨과 감사를 표하는 예배하는 삶을 통해 실천되고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 한국 교회에 상당히 널리 알려진 신학자로서 그의 저술들을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보다는 부활을 더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태도가 복음의 긍정성과 생명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데 큰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부패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단점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 유의하고서 그의 책들을 대한다면 유익 얻을 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