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그러나 나는 짖어야 한다”
신학실종
데이비드 웰스 지음| 신국판|부흥과개혁| 459쪽|2006년 11월
서평| 조주석 목사_합신출판부편집실장
현대문명을 거칠게 말하라면 그 외적 요소는 도시화라는 특징일 것이고, 내
적 요소는 상대주의가 될 것이다. 이 새로운 문명은 19세기 중반에 서구에
서 시작되어 들불처럼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문명의 한복판에 서
있는 미국의 현대 복음주의 교회는 세속 문명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함으로
써 그 본질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신학을 상실하고 있는 교회들
이를 가리켜 웰스는 신학의 실종이라고 한다. 즉 신학이 교회 중심부에서 변
두리로 쫓겨났고, 그 대신 개인주의와 대중주의가 현대 복음주의 교회를 점
령했으며, 목사는 진리 전달자에서 교회 경영 전문인으로 실추한 것이다. 따
라서 본서는 신학적 성찰이 담긴 기독교 문화 비평서 쯤
으로 분류할 수 있
다.
그러면 왜 신학이 현재 교회 생활에서 빠져나간 것인가. 그 이유는 신학의
세 요소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따로 놀기 때문이다. 즉 신앙고백과 신
학적 성찰과 이 두 요소에 기초한 미덕이 함께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성경 지식 연구에만 몰두할 뿐, 성찰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반 철
학자나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더 열성적이다. 이들의 성찰에는 신앙고백이
빠진 까닭에 그 성찰이 정작 하나님을 섬기는 작업일 순 없다.
그러면 일선에서 기독교적 실천에 힘쓰고 있는 일반 신자들에게서는 어떤 일
이 일어나고 있는가. 믿음의 지식과 신학적 성찰에 토대를 둔 진정한 실천
은 없고 자기 성취, 곧 성공을 기독교인의 실천의 결과라고 오해하고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이 바로 신학의 해체요 신학의 실종이라는 것이다.
신학이 교회에서 점점 퇴색되고 있는 현상은 다른 각도에서도 고찰된다. 그
것은 미국적 특성인 개인주의와 대중주의가 복음주의 안방을 턱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자유를 핵심 가치로 여기는 개인주의는 교회에서 객관적 진리를
잠식하고 주관적 체험을 중시하게 했다. 그래서 간증
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증거였지 오늘
날처럼 우리 자신의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 자신에게 눈을 돌리게 되면 자기 도취에 빠지게 되고, 교회 안에서 인
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라고 외쳐 댈 수밖에 없다. 노먼 빈센트 필과
로버트 슐러가 앞장서더니 복음주의권 대다수가 너도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
다.
대중주의는 개인주의보다 힘이 더 세다. 그것은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세속
적 신앙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대중적 여론은 지도자에게 참된 신학을 저
리 제쳐놓고 다중의 의사를 따라 교회를 지도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신학은
대중적인 슬로건 이상을 넘지 못한다. 이런 대중주의적 심리가 기독교 신학
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신앙을 가리켜 웰스는 신
약성경이 말하는 ‘세상’이라고 규정한다. 이 세상은 교회가 대항하여 맞
설 그 무엇이지 기꺼이 맞아들일 우리의 아군일 순 없다.
신학의 실종은 목사의 사역에서도 나타났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문직의 수효가 증가하고 그들의 위상도 높아
졌지만 목사의 위상은 점점 떨
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슬슬 목회직에 대한 전문화라는 말이 나왔다. 전문직
이란 자기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써 신분의 격상과 수익의 상승을 올리게 하
는데, 목회자라고 이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겠는가.
미국에서 칠십 년대 초에 목회학 석사와 목회학 박사가 생겨난 이유가 거기
에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목사는 진리 전달자에서 교회 경영 전문
인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정작 필요한 신학은 채우지 않고 전문적인 지식
만 더 보태 갔던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밀리언셀러 진입을 목전에 둔 <긍정의 힘>에 대한 신자들
의 열풍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제자의 도는 자기 부인에서 출발하지 부
패한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의 사역자 구인난이나 각종
워크숍이나 세미나의 포스터를 보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찾거나 그런 교육
을 시켜준다는 광고문이 주변에 제법 많아졌다. 이런 현상들이 세를 더 얻
어 가는데도 심기가 불편하다는 글들은 별로 올라오지 않는다.
이제 글을 마감하면서 저자에게 하나 묻고 싶다. 교회에서 신학의 실종이
왜 그렇게도
큰 문제이죠. “나는 신학이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지식이며, 신학에 대한 본연의 그리고 일차적인 청중은 지식인 집단이
아니라 교회라고 생각한다.” 웰스의 대답은 백번 지당하다. 교회가 신학의
일차적 청중이지 신학자나 철학자나 사회학자는 그 다음이라 한다.
교회는 신학의 일차적 청중이다
나는, 웰스가 자신의 처지를 ‘개’에 비유한 표현에서 그 처절함과 외로움
의 숨결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면서 달을 향해
짖어대는 어리석은 개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짖어야 한다.”
chochuse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