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오스 기니스 지음/홍병룡 옮김/4*6양장/384면/IVP/2000. 9.
<서평 조주석 실장/ 합신출판부 press@hapdong.ac.kr>
나는 어느 주유소 직원과 10분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지난 한
주간 동안 대화를 나눈 유일한 비그리도스인이다. 나는 종교적인 특정 구역
에 갇혀 익사할 위험에 처한 존재인 것 같았다. 지난 9개월 동안 유명한 교회
에서 일했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다. ‘나의 길이 아닌 것’에서 해방되어 나
의 소명을 발견하고 비로소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후 수십년 동
안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진리에 압도되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 책 저자
의 이야기다.
오스 기니스는 2차 대전 중에 중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회학 박
사를 받았다. 8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 체류하면서 현대 기독교 문명과 철학
의 흐름을 주도하며 유럽, 미국, 캐나다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온 실
천적인 기독 지성인이다.
이 책은 모
두 26장으로 구성되지만 글의 형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비슷하
다. 먼저 세속인의 치열한 삶의 적절한 에피소드를 제시한 다음 이것을 기독
교 소명과 적절히 연관시켜 심화해 나간다. 왜 이런 전개 방식을 택한 것인
가? 그 이면에는 세속 사회든 신앙 사회든 각각 궁극의 주인이 있고 그 주인
에게 충성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명이 이루는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 외적 양상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자기 주인에게 충성
하고 예배하는 인간의 피조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서술 방식은 세속 세계와 그의 신앙을 연계시키는 평생의 노력과도 무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은이가 소명은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이라고 주장한 바는 아주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 35년이 넘도록
하나님의 행진 명령에 따라 살려고 애썼다는 고든 맥도날드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소명의 의미가 더 확연해졌다고 호평한 것은 칭찬 일색만 아니
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문화요 가장 강력한 문화라는 것이 현대세계이다. 이
놀라운 혜택을 우리는 안고 산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가
져온 세속화, 사유
화, 다원화라는 것들이 기독교에 큰 손상을 입혔다. 세속화는 하나님을 삶의
변두리로 끈질기게 밀어내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피부로
느끼고 코로 냄새 맡는 이 오감(五感)의 세계로만 살라고 제한한다. 이에 못
지않게 사유화는 기독교 신앙이 삶의 공적 영역에 놓이는 것을 꺼려하고 비난
한다. 개인의 자유나 성취나 믿음은 사적인 영역에서만 작용해야 할 것으로
제한한다. 이런 서양 사회에서 지은이가 하나님의 소명을 되살려내고, 하나님
이 삶의 유일한 청중이라고 말함은 하나님 나라를 살려냄이다. 이런 외침이
서양 사회를 뒤엎기에는 역부족일지 모르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회복에는 이
보다 더 강한 처방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상황도 현대 세계라는 배경은 마찬가지
다. 하지만 서양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진행돼온 사회이고 우리는 그렇지 아니
하다. 무교적 불교적 유교적 사회 배경이 강하다. 그래도 기독교가 우리 사회
에서 무시 못 할 종교는 결코 아니다. 이런 까닭에 소명이라는 문제를 접근
할 때도 서양과는 좀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
니스가 소명에 대해 지
적하는 ‘가톨릭적 왜곡’이나 ‘개신교적 왜곡’이 우리 문화 전통과는 상당
히 거리가 있다. 그런 왜곡의 징후가 우리에게서 감지될지는 몰라도 주류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기독교도 이제 신선한 종
교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정화의 대상으로 세상에 비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다. 이 대목에서 기니스가 말하는 소명에 분명 귀 기울여야 하며 또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아쉽다. 이 책을 더 젊은 날에 접할 수 있었더라면 생의 낭비는 줄었을 법하
다.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 ‘소명’과 ‘신자의 삶’이라는 문제 앞에서 끙끙
대던 시절이 있었다. 신자로서의 삶도 뚜렷한 것이 없고 목회의 소명도 마찬
가지였다. 20여년도 넘게 이 문제와 씨름한 것이 진지한 것일까 소심한 것일
까. 소심하고 둔한 것으로 내비친다 해도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리 탓할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책을 읽는 도중에 나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혹시 내 일터가 아닐까 하는 스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