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화성탐사와 허무주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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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탐사와 허무주의 세계관

 

<김영규 교수>

·개혁주의성경연구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성경은 인류역사에 등장하는 궁극적 허무주의에 대해 답변해

 

2014년 1월 24일 싸이언스(Science)의 표지에 화성 탐사 로봇인 호기심’ 로버(Curiosity rover)로부터 찍힌 화성표면 장면이 실렸다그 장면은 인적이나 동식물 및 이끼 등의 식물체들이 보이지 않을 뿐 지구 환경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한 모습이다.

 

그 탐사 로봇에 의해서 보내어진 사진 자료에 구리 암벽이라고 칭할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사 바위도 있지만 실제로 이들 중 주변 지역의 그 진흙들에 대해서 성분 분석한 결과 아연니켈크롬산화망간산화티타늄산화칼륨산화나트륨산화알루미늄산화마그네슘산화철산화실리콘 등이 고루 분포된 흙들이었음이 확인이 되었다.

 

깊이 파서 채취한 진흙가루들의 열 분해에서는 가장 풍부한 가스로 200도 이하의 물들도 분석이 되었고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나 높은 상온에서 수소탄산가스황산가스산소메탄 등의 가스들이 방출됨을 확인하였다.

 

문제는 유기물이나 유기체에 대한 확증인데유기체는 발견하지 못했어도 퇴적층의 화학적 혹은 물리적 변화를 겪었다고 예상이 되는 유기물들은 분석이 되었다그러나 그런 증거는 아직 유기물의 초기 보존 형태로 이해되는 수준임을 밝히고 있다.

 

고대에 그런 유기물 분자들이 있었다고 해도 화성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써 이온화 방사능 물질들에 의해서 강하게 변형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평가 내용이다이런 유사한 확증들은 미래에 점점 더 큰 내용들로 확인이 될 것이다.

 

지금 그런 확증을 가지고 신학적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그러나 지구 중심으로 성경의 창조에 대해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시대에 와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일찍이 보드리야르는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이 현대사회에 가져다 준 허무주의가 얼마나 큰 내용으로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허무주의자라고 자칭하면서 고발한 바 있다오늘날 겨울왕국에 느끼는 실재감과 같이 자연적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자료들에 의해서 자연적 실재들을 대체해 가는 초실재(hyperreal)의 시대에 화성에서 보내온 분석 자료들과 같은 실재성이 모든 학문 분야의 진실성으로 더 크게 확대될 것임에도 틀림이 없다.

 

과거의 정치적역사적형이상학적 혹은 실존적 허무주의와 다르게 진리에 대한 기존의 접근방식들을 더 크게 파괴하는 허무주의는 지금 과학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이런 허무주의의 출현은 처음 성경에서 제시하는 허무주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일상생활과 보편적 가치관들에 잘 적응해 온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에 비해서 에덴동산을 주로 의식하여 성경을 해석해 왔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구 공전을 처음 예상할 수 있는 네번째 날의 창조가 일어나기 전에 창조의 제3일째에 이미 식물들이 창조되었다는 보고는 충격으로서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그러나 그것을 넘어 온 우주의 질서들이 하나 하나 명령과 같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제기하고 있는 허무주의에 대한 충격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내용이다그런 창조에 대한 설명은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영원한 단절을 예시하는 것만이 아니다.

 

최대로 합리적인 피조물로서 인간들이든 천사들이든 피조물 편에서 탐구하는 모든 질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점점 더 크게 근본적 허무주의가 그 귀결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 방식으로부터 깨닫게 될 것이다.

 

사탄이 뱀을 통해서 그의 영원한 지식으로서 제시한 합리성을 대표한 지식이란 겨우 피조물들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필연적 이론인데그것은 뒤바꾸어 보면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감추는 거짓의 본질이라고 해야 될지 모른다.

 

지금 너무 성경이나 하나님을 미화하고 초월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비난할지 모른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무로부터 어떤 원소도 새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아무리 작은 바이러스일지라도 분자들의 움직임에 있어서 그 생명체의 자율성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그런 비난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각세계처럼 모든 주변의 세계가 없더라도어떻게 잠을 자면서 꿈의 세계를 만들어 그런 현실 속에 파묻혀 있을 수 있는지를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시대만큼우리의 허무주의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려질 것이다거대한 학문의 발전이나 종교들이란 그것에 대한 답이 아니다정치나 경제 혹은 예술 등은 더욱 더 그것에 대한 답이 아니다답이 있다면답과 행복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일 것이다.

 

피조물편에서는 우주의 크기와 그 우주의 역사는 동일하다그런 면에서 소위 시간이 없는데 역사를 가지고 우주를 풀고자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지향성 자체의 오류와 판명성의 오류에 의해서 포기할 수 없는 탐구의 길이 모두 역사를 대신할 것이 분명하다면성경에 따라 허무주의는 점점 더 커져 갈 것이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계의 모든 질서가 명령이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이것으로 인류 역사 속에 등장할 수 있는 모든 궁극적 허무주의에 대한 답이 이미 주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얻은 이런 답을 가지고 화성을 개척하러 가야 할 것이요 우리의 은하계 안에 지구와 같은 별들을 찾아 개척의 길을 터 나아가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거기에도 분명히 우리와 같은 인간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