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곧 최선이라는 착각_남웅기 목사

0
17

최고가 곧 최선이라는 착각

 

< 남웅기 목사대구바로선교회 >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거나 유력자들도 심판 받을 수 있어

 

 

우리가 하나님께 정말 조심스러워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그건 죄와 실수로 인한 두려움이 아닙니다실패에 대한 부끄러움도 아닙니다큰일을 이루지 못한 민망함도 아닙니다그건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반성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미 밝혀주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사 55:8). 예수께서 주신 교훈도 그러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4-5). 참으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도대체 웃는 자가 복이지 어떻게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위로 받는 게 어떻게 복입니까남을 도우며 위로하는 게 복 아니겠습니까온유하면 땅을 뺏기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 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산상수훈은 천국의 교훈이지 현실에서 직접 적용할 건 아니다라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압니다이 땅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회복시켜 주실 이는 하나님뿐이라는 것을하나님은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이라는 것을그것이 바로 약자가 강자에게 양보할 수 없는 비교 우위의 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린 곧잘 말씀을 묵살합니다끊임없이 강자를 우러르고 약자를 비웃습니다성도들은 출세와 치부에 골몰하고목회자들은 교회 성장에 목말라 있습니다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이에 제마다 거짓을 수단으로 삼고 말씀의 엄정함에 물 타기를 예사롭게 하며 날로 뻔뻔해집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은 수치가 아니요 죄악도 절망이 아닙니다우리의 본성을 하나님은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전전긍긍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일지도 모릅니다(요 12:43).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과 짝하고 세상풍조를 쫓는 일에 분노하십니다성공과 실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설레발치는 것만큼 망령됨이 없습니다우리가 하는 자랑의 근거는 예수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우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마다 우상이 넘칩니다우상은 형상만이 아닙니다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하나님이 싫어하는 걸 내가 사랑하거나하나님 뜻보다 내 뜻이 앞서면 그것이 모두 우상입니다.

 

최고가 곧 최선이라는 오류도 우상입니다교회 성장이 안 되면 잘못 나선 목회 길이 아닌가?’라며 타인이나 본인도 헷갈려 한다면 비극입니다오늘날 최고의 교회가 누리는 영광들은 사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부여한 영광일 뿐입니다그 영광의 허무함을 우리는 최근 심심찮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보혈 공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들입니다우리의 형편과 능력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오합지졸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습니다(삼상 17:26,36). ‘하나님의 백성’ 그것이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었습니다다윗을 분노케 한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군대를 골리앗이 모욕한 탓입니다.

 

최고가 최선은 아니라는 교훈은 므두셀라의 죽음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창세기 5장에 기록된 족장들의 나이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라 생각합니다므두셀라의 죽음은 노아 600년 홍수 바로 그해에 해당합니다.

 

노아 600년 2월 10일에 방주가 닫혔습니다므두셀라는 그 해에 죽었습니다이 사실이 므두셀라가 노아의 방주를 외면했다는 의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반면에 홍수 심판은 방주 구원의 유일성을 보여줍니다방주를 외면하면 세상의 어떤 최고도 의미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래도 유명한 사람이거나 유력자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주저합니다왜 그들이 심판을 당하면 안 됩니까그게 바로 최고에 대한 환상의 극치입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창 5:22)고 증거함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이 땅에서 살다 간 에녹의 300년이 최장수자인 므두셀라의 969년보다 더 영광스러움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므두셀라는 그 반대의 상징이거나혹 에녹이 영생했다면 므두셀라는 심판을 받은 인류의 상징일 지도 모릅니다이 점에 있어 우리의 욕심이 앞서서 969년 동안 최장수한 것만이 영광스러운 인생이라고 왜곡한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충분히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생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거지 나사로가 그랬습니다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영광스러운 아브라함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 신자들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영광 가운데 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