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구닥다리가 어디 있나요?
< 노승수 목사, 인천노회 >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주일 공동 예배’의 참석을 가르쳐야 합니다”
선조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으신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성경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쌍둥이도 세대차가 난다며, 점차 공교회로서 공동체적 신앙고백을 멀리하고 아이들과 청년에 이르기까지 개별 교육에 개별적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초등부 예배, 중등부 예배와 같은 이런 말들은 부적절한 말입니다. 그리고 수요 예배, 금요 예배도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배라는 말은 ‘공동 예배’의 줄임말입니다. 즉 주일 낮 예배와 저녁 예배 정도에 쓰면 적절한 말입니다.
이런 중요한 말을 마구 남발하다보니 한 교회 안에서 부모 자식 간에 세대차도 극복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야 천국 가서 아브라함과 엄청난 세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넌센스입니다.
성경이 표준이라는 말, 즉 ‘오직 성경‘이라는 말과 ‘전체 성경‘이라는 말은 모두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동일한 신앙고백‘, 즉 동일한 교리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라는 거창한 건 뒤로 하고 적어도 한 교회 안에서는 ‘동일한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주일 공동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주일 성수’라고 볼 수 없고, 충분히 신앙을 고백할 나이에 입교 예식을 치른 후에도 주일 공동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청년 예배’니 ‘중고등부 예배’니 하는 방식으로 청년들과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지상 교회에서 이러 저러한 교파들이 있고 교리적 색깔도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 ‘구원에 이르는 신앙 원리‘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적어도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에서는 이것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르침으로 이어지지 않고 또 부모와 자녀간에 신앙적 대화를 잇는 가르침으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쌍둥이 간에도 세대차를 부추기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처음부터 부모와 함께 공동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이라면 철들기 전부터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엄숙함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에게 부모의 신앙을 물려줄 수 있는 구조는 빨리 정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직분자 부모들도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서 거의 방관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같이 예배를 드리니 않다보니 서로 대화할 접점이 없습니다. 고작 관심을 보인다는 게 ‘오늘 예배 잘 드렸니?, 전도사님이 어떤 말씀 전해주셨니?’ 정도입니다. 신앙의 내용과 전할 유산이 없는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전체가 1주일에 20분 정도 만나는 전도사의 메시지에 달려 있다 보니 ‘체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부모가 물어도 제대로 자신의 신앙이나 배운 걸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신앙을 전도사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전도사가 아이들의 신앙 양육에 대해서 교회 앞에 약속한 일은 없지만 적어도 부모는 아이들의 ‘유아세례’ 시에 아이들을 신앙으로 양육할 것을 약속한 이들입니다. 가정에서 가장에 의해 매일 익숙하고 반복적으로 아이들의 심령에 가르쳐져야 할 본질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되려면, 적어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주일공동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부모는 그것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고, 교회의 직분자들 역시 예배 시간에 정숙함을 깬다는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쳐서 아이들이 예배하는 인격자로 자라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베푸시는 시간인 ‘주일 공동 예배’ 시간에 다음 세대를 참석 시키지 않는 것은 사실상 교회를 허물어뜨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그 결과가 교회 곳곳에 나타납니다. 한국 사회 청년 중 크리스찬의 비중이 4%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인지는 몰라도 거반 맞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다면, 지금 자라나는 주일학교는 더 심할 것이 불보는 자명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거 같습니다. ‘상황화 논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신앙이라는 것이 ‘유행‘ 내지 ‘시대의 풍조‘와 흡사해집니다. 스펙이 중요해지다보니 교회에서 조차 심지어 신앙에서조차 스펙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 모두가 세대차를 벌려놓는 교회 교육 때문입니다. 막 나가는 것을 견제할 장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치를 갈등으로 여기고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서 세대차를 부추기는 현상이 점차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주일 공동 예배’의 참석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에 구닥다리가 어디 있나요? 어른들도 자꾸 자신의 신앙을 구닥다리로 여긴다든지, 젊은이들의 새로운 바람은 신선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선조부터 이어온 신앙의 유산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이 나라 다음 세대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