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교회의 선거제도와 직분자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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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선거제도와 직분자 선출

 

< 김영규목사 >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전 교회가 참여하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장로들이나 감독들이 임직돼야”

 

 

진보되고 합리적인 사회정치제도가 세속정치에서 계승되지 못하였을지라도, 교회 안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어 남아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스 사회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사회적, 정치적 혹은 종교적 단체나 공동체가 어떤 계기와 동기에 의해서 그런 제도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은 주제가 되겠지만, 교회 안에 그와 같은 합리적 정치방식이 심어지게 된 것은 사도들의 경건성이나 합리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교회들을 세울 때마다 그런 합리성을 현저히 남겼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사도 바울에게 주신 하늘의 사도적 권세에 비해서 사역에 있어서 인재들을 등용하거나 사역자들로서 함께 동행시킬 때 그가 그런 합리성을 철저히 지켰다는 것이 주목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동역자들에 대해서 소개할 때, 복음에 있어서 모든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로 소개하였거나, 그 절차에 있어서 교회들로부터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자들이 큰 신뢰성의 근거이었으며, 그 열심이나 간절함에 있어서 여러 번 여러 방식으로 시험한 자들(고후 8:16-24)이라고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기록 중에서 사도 바울이 동행자로 택한 실라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선거에 의해서 복음의 사신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반면 요한이라 하는 마가의 경우 그런 절차에 있어서 확인이 되지 않지만 그 사역 상 검증이 되었던 근거에 의해서 탈락을 요구하였던 사건(행 15:38)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투는 일을 성령의 소욕이 아닌 육체의 소욕으로 여긴 이상 아주 절제된 방식으로 의견충돌을 넘겼을 것이라는 사실은, 고린도전서와 같은 교회를 향한 강한 책망이나 권고의 글을 썼을 때, 고린도전서나 고린도후서로 표현된 하나님에 따른 짓눌린 근심의 표현들은 그의 품격과 인품에 있어서 그 유명한 증거들로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일반적으로 이와 관련된 사회 정치적 용어들을 사용할지라도 그들을 영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정치적 어떤 영역의 피선거권과 선거권 및 다른 권리들을 표시하는 시민이나 거주자라는 개념들을 그들이 사용하더라도, 성도들에 대해서 하늘의 시민권이나 거주인이라는 개념으로 특별히 전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시민권’이라는 용어 사용을 보면 거주하는 곳을 떠나는 여행자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들(apodemoi)’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세상에서 하늘로 가기 전의 성도들에 대해서 ‘고향으로 들어오는 자들(endemoi)’이라고 쓰거나 하늘로 가서 사는 성도들을 ‘고향에서 나가는 자들(ekdemoi)’이라고 표현한다.

 

한편 사도들의 동역자들에 대해서도 ‘함께 일하는 자들(sunergoi)’이라는 용어도 쓰지만 ‘고향에서 떠나 함께 하는 자들(sunekdemoi)’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런 예와 다르게 성도들에 대해서 하늘의 ‘함께 한 시민권자들(sunpolitai)’이라고 쓰면서도 이 세상 사람들에 비해서 하늘에 속한 ‘이방인(chenoi)’ 혹은 이 세상의 시민으로 ‘거하지 않는 자들(paroikoi, parepidemoi)’이라고 칭한다.

 

그런 용어 사용 뒤에는 만물 안에 일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시고, 중생된 그리스도인 안에 그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살며 그를 사랑하였고 그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실성 안에 살며(갈 2:20), 사도들과 장로들이 결정한 결정도 그들이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결정한 것(행 15:28)이라는 원리가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들에 결원이 일어날 때 전 교회가 참여하는 선거에 의해서 새로운 사도를 선출하였고, 각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을 때도 항상 전 교회가 참여하는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자들이 장로들이나 감독들로 임직되도록 하였다.

 

교회를 그 당시 사회적 용어인 ‘회중(ecclesia)’으로 부른 이상 그리스-헬라 문화권 아래서 합리적인 절차를 고려한다면, 역시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나 바울을 보낼 때에도 그들이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어 보내졌다고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울 시대보다 오래 전부터 전 시민들이나 혹은 같은 시민들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선출된 대표자들에 의해서 어떤 사람들을 뽑는 결정이 이루어 졌을 때, 시민이 혹은 그 대표자들의 회의가 ’자신으로부터(ex eautes)’ 몇 사람들을 ‘뽑다’ 혹은 ‘선거에 의해서 선출하다(xeirotonesai)’는 표현만은 그 당시 일부 비문들에 명기되어 있다.

 

놀랍게도 사도행전 15장에서 증거된 대로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아 모인 광역 회의(sunodos)의 결정문에는 투표수가 언급되어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보낼 유다와 실라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는 표현이 편지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다만 임기와 관련해서 그리스와 헬라 시대의 선거제도에 있어서 선출된 직임이나 직책들의 경우 1년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종교인들의 경우 예외적으로 ‘시민에 의해서 평생을 통하여(dia biou)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자라는 표현이 발견될 뿐이다.

 

그렇다면 세속정치 역사에 있어서 로마시대 이후부터 한 권력자에 의해서 광범위하게 임명권이 확대된 역사에 비해서, 그리스의 민주정치의 합리성으로서 선거제도에 의해서만 항상 직임과 직책이 성립하는 정신이 교회 안에서만 종속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에서 그 정신이 가장 크게 보존되어 오면서 공의 자체가 큰 열매로 되어 있는 극히 합리적인 절차를 강조한 교회정치에 있어서 좀 더 발전된 내용으로서, 회의들에 있어서 ‘의장(moderator)’과 어떤 결정에 대한 집행기관(executive commission) 사이의 투명한 분리, 의장의 기능이 지교회 당회에서까지 윤번제로 실행되었다는 점, 더 넓은 회의들에 있어서 의장의 직임적 항존성 거부 등이 발전되어 왔다.

 

한국 교회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의 순수한 개혁교회나 장로교회의 전통에 있어서 치리장로들의 임기제도나 당회의 의장 기능에 있어서 한 교회 안에 계층이 없이 동등하게 위임된 목사들을 모시고 그리스도만을 참 목자로 삼아 윤번제로 섬기는 공의가 전혀 정착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나 성직자들 자신의 자질에 있어서 죄성 때문에 그런 이상적 현실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그런 이상을 교회의 헌법에 남겨 놓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