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과학 세계의 발견과 하나님의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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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계의 발견과 하나님의 계시

 

< 김영규 목사 >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세계 질서나 구원의 질서는 하나님의 계시 개념에 의해 풀 수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빙점보다 높은 온도에서 탄소나노튜브를 통과하는 물이 고체가 될 수 있는 현상을 2000년에 일본인들이 처음 발견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이런 발견에 대해서 연구하여 여러 논문들을 지금까지 발표하였고, 2005년에는 한국의 과학자도 상온에서 이런 현상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한 일도 있다.

 

지금에 와서 이런 발견들이 점점 기초과학의 혁신적인 개념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그런 현상들에 대한 발견은 거시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도 하고 온도, 에너지, 압력 등 물질의 근본 개념들이나 그것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자들에 대한 과학적 기초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다시 검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즉 물이 1.1-1.2 나노미터 두께의 탄소나노튜브 대롱 내에 갇히게 되었을 때 상온에도 불구하고 얼음과 같은 상태가 되고, 그러나 그 보다 굵은 크기 내에서는 액체 상태가 되어도 그 두께보다 더 작은 탄소나노튜브 안에서는 물분자들이 존재하지 않고 비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순수한 물의 경우 섭씨 -42도까지도 얼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적어도 섭씨 650도까지 큰 압력을 주었을 때도 끓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더구나 물의 경우 섭씨 4도까지 그 밀도로 최대로 높아졌다가 그 보다 낮은 온도에서 산소에 연결되어 있는 수소 분자들의 유연성이 떨어져 점점 밀도가 낮아지면서 물병에 담은 물이 얼었을 때는 오히려 그 부피가 커지는 현상을 흔히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과 같은 특별한 물질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상태들, 즉 기체상태, 액체상태, 고체 상태가 특별히 일상적인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 현상들을 측정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인자인 절대온도에 대한 개념이 그 상태들의 부피 비율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물에 대한 진실한 해석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섭씨 0도 이하 물의 상태에서의 부피에 비해 섭씨 100도 이상 물의 상태에서의 부피가 1.3661배 된다는 관찰 사실에 의해서 절대온도 -273.15의 경우도 계산이 되고 있다는 문제이다. 지금 그런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절대온도에 대한 개념이 물질의 부피와 압력 등의 요소들과 함께 맞물러 있다는 사실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더 근본적인 개념들에 의해서 자연 현상이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빛보다 310배 빠른 정보의 속도가 발견이 되었기도 했지만, 정보들을 전달하는 정보입자들 중에 절대속도로 운동한다고 가정된 빛보다 빠른 정보입자의 운동이 지금 발견되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우주 탄생에는 적용될 수 없는 폭발의 개념을 잘못 적용한 빅뱅의 가설도 믿지 않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 타임머신의 개념도 받아 드릴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빛보다 빠른 정보입자들이 발견이 되었다고 해서 새롭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창조시 인간에게 내린 특별한 자연보존의 명령은 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칼빈과 같은 개혁 신학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런 명령과 그 과제가 더욱 더 큰 특별한 기독론적인 의미가 있다.

 

물론 칼빈의 신학을 잘 해석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낸 성직자들의 신학 입장을 존중하는 장로교인들은 성경에 대한 엄밀한 신론적 해석에 따라 그리스도의 중보직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창조의 중보자로는 믿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를 천사들의 중보자로도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세 전에 그의 중보직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나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의 중보직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직이며 또한 그 중보직에 관한 예정에는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 속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매 개인들의 시간상 열매들로 나타나는 과정(구원의 서정)이 처음부터 포함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에베소서 1장 12절에 밝힌 것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의 의논에 따라 역사하시는 만물에 대한 작정의 질서에 관한 문제를 시간상의 개념들로 풀 수는 없어도, 세 위격이 동일 실체로서 실체적 혹은 본질적 속성들에 있어서 동등성을 가진 이상 상호 전 위격과 그런 속성들로 교류하시는 위격들 사이의 구별된 원리와 근원성 그리고 구별된 질서와 인과성 및 역사성에 의해서 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 위격들 사이의 상호 구별성에 의해서 풀 때에는 세 위격들 사이에 동등하게 교류하시는 그 본질적 속성들을 그 기반으로 하여 풀어야 하는데, 지금 그 본질적 속성들에 대한 이해가 대부분 우리의 물리적·시간적 표상들과 혼동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과거 헬라로마 문명의 영향 하에 소위 보편적 개념들을 지각적 개념들보다 우위에 두거나 선행시키는 경향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 지금 그런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열린 것뿐이다. 즉 소리나 색, 맛 자체와 같은 감각적 표출들은 자연 자체에는 없는 뇌의 피질로부터만 다른 세계로 열려져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자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열리는 공의, 사랑, 긍휼과 같은 발현 내용들이 모두 자연의 세계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세계로 이미 들어와 있는 현상일 수 있다는 여지는 미래 학문들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연의 모든 세계가 동시에 다른 세계와 묶여져 그 세계들을 배후로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배후의 세계들이 하나님이 아닌 창조의 세계인 이상, 세계 질서나 구원의 질서에 대해서 사람이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 개념에 의해서 풀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과 ‘전 성경으로’(tota scriptura)의 규범적 성격은 더 커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