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인생을 통해 맺어야 할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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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통해 맺어야 할 열매

|김영규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들이 없는 곳에는 교회도 없어”

매 역사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들이다(마 21:43).

 

이스라엘에게 실패가 있었다면 거기에 있었고 지구상 어떤 지역에 교회가 있었다가 실패가 있었다면 거기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들이 없는 곳에는 그의 나라가 없는 것처럼 역사적 참된 교회도 없을 것이다.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든, 먼 타향 땅에서 그 땅의 백성을 위해서 죽도록 봉사하든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나라의 열매들을 맺고 사는 것이다. 교회의 직책을 가진 자들이 나라의 수장으로 섬기든, 기업의 최고 책임자로 섬기든, 목사가 되어서까지도 생활고로 인하여 남몰래 일일 노동자로 일하든, 한 지교회의 성직자가 일시적으로 넓은 치리회의 의장으로 섬기든,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사로 섬기든, 매 역사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나라의 열매들을 맺고 있다면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실패란 없는 것이다. 

 

섬기는 직책들이나 섬기는 때와 장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열매들은 공로나 공적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열매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나 구원의 조건도 아니다. 그렇게 조건이 되면 바울 사도가 그렇게 큰 문제로 삼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런 열매들을 무시하면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들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근거와 뿌리 및 목적을 파괴하는 반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이 된다. 그것들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가장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서 그의 사랑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 결정되고 준비된 은택들이고 빛이요 향기들일 뿐이다. 

 

그러면 그런 열매들이나 향기 혹은 빛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들은 모든 인류에게 창조의 때로부터 선물하시사 나타나는 단순한 도덕적 품성들이나 윤리적 책임들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이며 성령의 열매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성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신 그를 알지 못하고 사는 원수에 대해서 사랑을 베풀고 계시고 친히 성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죄인들의 죄들에 대한 형벌을 다 감수하셨기 때문이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자신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지향해 가는 그런 거짓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양선과 사랑 등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선한 것들(엡 5:9)만이 그런 열매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평과 희락도 그런 열매들로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 깊은 곳에 죽음 뒤에도 ‘기쁨’과 ‘웃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즐거움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선물들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것들을 가치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들은 가치들도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인간 이외에 동물들이나 피조물들에게 내려질 수 없는 하나님과 그의 속성들이 선물로 되어 있는 독특한 복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긴 일들이나 일시적으로 맡긴 직책들, 장기간 맡긴 소유물 자체들이 복이 아니라 맡긴 일이나 맡긴 직책, 맡긴 소유물들을 통해서 맺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들이 바로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타난다는 그런 복들이다. 

 

그 복의 최종적인 성격은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나에게 직책들이 있으며 나에게 맡긴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이나 그런 직책들을 통해서 그의 나라의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그에게 복이라는데 있다. 그런 직책과 그런 일들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으로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그에게 진정한 복이요 그 복 외에 진정한 복도 없고 최고선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 복들은 실제적으로 성육신 하셔서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 그리스도 안에 다 표현되어 있다. 그 그리스도 안에 세상에 존재해 왔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하여 지고 그 충만이 그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정도로 그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께서 받아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성하는 것들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있지만 아직 그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면서 그리스도의 형상 곧 성령의 열매가 이미 우리에게 있지만 아직 이 세상에서는 충만하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말대로 그런 열매들은 중보자이시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질료적 원인으로 있다는 것일 뿐이요 어떤 이에게 그런 복이 임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인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도 그런 열매들을 맺도록 하시는 유효적 원인은 되어도 어떤 자가 그런 복을 받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창조된 형식들로서 본성의 필연성에 속한 피조물들의 자유의지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의 모든 문제들을 푼다고 해도 그 자연의 어떤 무한성, 영원성 및 필연성이나 인간의 타락이 그것의 가까운 원인들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복의 가장 먼 원인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들로서 복들은 그렇게 멀고 근본적인 원인인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에게만 있는(롬 9:18; 엡 1:11) 복들이다. 그런 복들이라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복들인가! 그런 복들은 영원히 우주가 없어도 기뻐할 복이다. 그 영광을 피조 세계의 어떤 영화와 바꿀 수 없고 어떤 영광에 의해서도 빼앗길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자신의 본성으로 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어 있는 복이란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한 매 순간의 호흡과 매일의 음료와 양식으로 남아 있을 때만이 누리는 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가치는 그런 복을 받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