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 이재헌 목사, 새과천교회 >
“방송 속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사람들 많아”
얼마전 우리 모두의 귀를 의심케 할 만한 뉴스가 있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젊은 부부가 생후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굶어 죽게 내 버려두
었다는 사건이다. 정말 무어라고 할 말조차 잊게 만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
다.
생후 3개월 된 아이 굶겨 죽이다니
사람이 가진 사랑의 감정 중에 가장 끊을 수 없는 본능에 가까운 사랑이 자
식 사랑이라고 했다. 더구나 그들이 중독되어 빠져있던 게임의 내용이 사이
버 상에서 아기를 키우는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 숨조차 멎어 버리
는 것 같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도록 했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
라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참으로 놀라운 복이
며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선물
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이든 아무 규제도 이유도 없이 아무렇게나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 의지(free will)는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
는 능력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 자유의지에는 반드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
임을 동반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중
요한 사실을 잊고서 단지 자유로움을 벗어나 방종을 즐기며 그 속에 자신을
던져버리고서 결국은 깊은 중독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것이 비단 게임뿐 이겠는가? 음식, 행동, 취미, 운동, 생각 등등 모든 삶
의 영역에서 인격적인 의지를 거스리는 중독의 폐해는 그 수를 셀 수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 자신이나 또 목회
의 대상인 성도들도 동일한 죄성을 가진 인생임을 생각할 때에, 목회자로 부
름 받은 자들이나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배우며 경험하는 성도
들 모두가 사방에서 우겨 싸며 다가오는 갖가지 중독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이버 상의 가상현실 속에 있는 아기를 키우기 위하여 혈육을 나눈 실제의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둔 비정하고도 비인간적인 부모의 이야기가 어찌 그들
만의
이야기이겠는가?
견고한 성을 쌓은 것처럼 높이 쌓아 올린 자기 만족의 신학 세계 안에서 스
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보람이 되고 만족이 되는 신학적 사고의 중독에 빠져
있기에, 오염된 공기 속에서 순간순간의 삶을 지켜 나가기에 헉헉거리는 성
도들의 현실적 필요를 외면하고 있는 신학 중독증 목회자의 모습이 혹 나의
모습은 아닐까?
반복적인 교육과 최선을 다하는 영적 인도의 손길을 외면한 채 끝없이 펼치
는 자기 고집과 현실주의적 핑계에 가득 찬 성도들로 인해 지쳐가는 목회적
갈등을 피하면서 바른 교훈과 목양의 양심보다는 타협적이고 인기 관리의 바
람타기 목회에 중독된 것이 혹 나의 모습은 아닐까?
현대화, 대형화, 화려한 외형주의에 빠져있는 사회를 비판하며 바른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어느새 고급화를 넘어 귀족화, 차별화
된 교회의 모습과 거대한 몸집의 대표적 인도자라는 자부심으로 인정받기 좋
아하는 스타주의 목회에 중독된 모습은 아닌가?
누구보다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실천하며 바르게 양육한다는 최선의 자부
심과 자신감이 시간이 갈수록 사람의 눈에 보이는 초라한 열매만을 안겨
줄
때에 오히려 열등감을 대신하는 구차한 모습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
아집과 고집적 만족에 빠져있는 자아중독증의 모습이 나에게는 없는가?
이런 생각들을 나열하면 할수록 더 많아지는 부끄러운 모습들이 거울을 보
는 듯스쳐 지나 간다. 사이버 아기에 정신을 뺏겨 혈육의 아기를 죽음으로
방치하며 몰아낸 한심하고 기막힌 그 사람들의 모습이 목양의 현장을 묵과
한 채 신학적이거나 혹은 목회적인 이론과 얄팍한 경험과 꺾을 줄 모르는 고
집에 중독된 내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이 된다.
자기 아집에 빠져서 살지 않아야
다시금 머리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진실된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다. ‘모든 일에, 모든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거룩한
CORAMDEO의 신전사상(神前思想)에 중독된 하나님의 목회자로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