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고대 언어와 성경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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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언어와 성경의 기록

< 김영규 목사 >

“창세기 등 성경 문서들 보관 문서일 가능성 높아”

애굽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파피루스가 소위 ‘종이’로 쓰여진 
역사는 주전 3000년 전으로까지 소급해 간다. 잉크를 가지고 종이에 글을 쓰
거나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은 특별한 발명이고 문화이다. 

BC 3천년 이전부터 기록문화 발전해

제6왕조 이전의 고대 애굽에서는 이미 서기관들이 기록문화를 주도하여 곡물
들의 수확이나 저장이 이루어지는 장소, 사냥 터, 각 종 생활물품의 생산지 
등 공적기록이 이루어져야 할 장소들에서 동반하여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
라 관원들의 산보나 사냥에도 동반하여 기록하였던 것으로 보아 행적과 언
행 일체들이 그대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그 시대의 돌 벽의 양각조각으로부
터 잘 증거되고 있다. 

그런 서기관이 등장할 때마다 귀에 한 두 개의 필기도구와 어깨 사이에 파피
루스 두루마리 하나를 끼고 손에 든 서판 위 파피
루스에 기록하는 장면이 등
장하고 있다. 그 곁에는 항상 독특한 조그만 물주머니가 달린 적색과 흑색
의 먹통 곁에 큰 홈이 있어 여러 크기의 두루마리들을 보관하였던 장식된 이
동용 글 상자가 등장한다. 
그런 조각들은 기록문화의 전문성을 알려주고 기록보존의 공공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고대 근동 파라시대(주전 2600년)의 문서 내용에 ‘PN이 기장하
였다’고 하는 문서 기록자의 관직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런 공
공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우르 제3왕조시대의 토판들로부터 알려진 관직들인 문서보관소장(ga2-dub-
ba)이나 총리대신의 문서보관소장(ga2-dub-ba-sukkal-mahha)에 대한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악카드 사르곤 왕 시대(2334-2279 BC) 이전의 점토
문서들에 언급된 ‘PN이 이 점토 못(사방으로 기록된 못 모양으로 생긴 점
토 통)을 끼어 넣었다(PN kak-bi e2-gar8-ra bi2-ru2)’는 표현으로부터 이
해될 수 있다. 오늘날보다 기록 문서들의 기록과 보관에 대한 공공성이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제6왕조 이후의 돌 벽의 양각조각에 서기관이 등장하는 기록현장에는 
흔히 두 명의 
서기관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속기록을 하였다는 증거가 되
고 있다. 조금 후대이지만, 대략 고대 애굽 제12왕조에 속한 ‘메리카레 교
훈집’에 나타난 “한 왕의 칼은 그의 혀이고 그의 말들은 어떤 전쟁보다 
더 강하다. …. 보라 그들의 말들은 기록들에서 계속된다”는 교훈은 고대
의 시대정신 일반을 반영한 것이다. 
고대 애굽을 제외한 다른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주로 토판에 글을 써서 구워 
문서들이나 문헌들이 보관되었지만, 종종 금이나 은 및 동으로 만든 평판에 
글을 써서 보관하기도 했다. 슈메르 시대로부터 다리우스 왕에 이르기까지 
그런 금속 서판들에 새겨진 문헌들이 알려져 있지만 고대 앗수르 왕들의 것
들이 유명하고 특히 지금 루블 박물관에 있는 사르곤 2세(722-705 BC)의 업
적을 기린 금 서판과 은 서판이 유명하다. 

그런 정교한 금속 서판들은 금속들을 잘 다루는 공예들이 발전되었기 때문
에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금속공예들이 고대에 얼마나 크게 발전하
였는지는 주전 2500년 이전 슈메르 우르 제1왕조에 속한 슈브 아트(부 아
비) 여왕의 화려한 금관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금속공예가 어
떻게 이
루어졌는지는 슈메르 문헌들 자체로부터 알 수 없고 고대 애굽의 제3왕조에
서 제6왕조 사이의 돌 벽에 새겨진 그림들에서 알 수 있다. 
먼저 서기관 앞에서 금이 섞여 있는 원석들을 중앙의 끈을 중심으로 두 저울
판을 가진 오늘날 천칭과 같은 균형 저울에 무게를 달아 계산하고 원석을 녹
일 때는 여러 사람들이 끝이 길다랗게 둥근 긴 대롱들을 통해 불어서 열을 
높여 녹인다. 그 다음 녹인 금물을 바닥 거푸집에 부어 어떤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쳐서 정교하게 가공하는 작업의 순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모든 과정을 벽에 새겨 그리고 있고 설명하는 글은 남은 여백에 기록
하고 있다. 수학 책이나 설계도도 대부분 기본 도해에 대화체 혹은 설명체
로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으로부터 언
제 글자로 발전되었지는 의외로 잘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애굽의 상형문자도 언제 어떤 특정한 그림이 소리를 구성하는 글자로 바꾸
어 졌는지 불확실한 것처럼, 고대근동의 주전 3300년대에서 3000년대에 속
한 수많은 토판 문헌들에 나타난 글자들도 음성을 구성하는 글자들로 이해되
지 않고 마
치 그 자체로 독립적 의미를 가진 표의문자들처럼 보이기 때문
에, 표의 문자들이 아니고 표음문자들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발음되었고 어
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지금 불확실한 체로 남아 있다. 

그래서 새들이나 그릇들 및 물고기들 등의 목록들이 열거될 때 어떤 종의 기
본 그림에서 변형되어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이 구별되어 소위 ‘어휘사전목
록’이 기록된 토판들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해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물론 
그 어휘사전목록이 일부 몇 백년 동안 보존되는 경우가 있지만, 후대의 언어
로 그 발음이 표기되거나 설명이 되지 않아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가장 오래된 이중언어사전은 주전 2400년 전의 에블라 토판들에 포함되어 있
으나 어떤 한 글자가 여러 가지 음운표기들로 읽을 수 있어 학자들 사이에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여 정확한 판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어떤 음운
표기를 선택하여 거기에 맞는 정확한 판독을 할지도 오늘날의 종교 정치적 
상황이나 역사적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
분이다. 

그러나 적어도 출애굽기 17장에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라’고 모세에게 

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특별히 명령하신 것이며, 야곱의 행적으로 끝나
는 창세기는 요셉이나 그 측근에 의해서 고대 높은 기록문화의 관습에 따라 
가족문서들 중 하나로 기록 보관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관습에 따라 야곱 행적 기록 가능성 높아

창세기 11장 이전(고대근동 열국시대 초)의 여호와 하나님이 주체로 된 기록
들도 셈족의 고유한 계시와 역사 문서들로 오랫동안 보관된 기록들일 가능성
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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