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정암 박윤선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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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박윤선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김영규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웨신고백서 받아들인 것은 정암의 신학 정체성 보여줘”

어떤 신학자의 신학이나 어떤 학자의 사상에 대해서 평가할 때 어떤 일면이
나 어떤 시기만을 보고 그것을 강조하여 평가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할 부
분이다. 

웨신 받아들인 것은 
정암의 공헌

합신 교단에 있어서 자랑거리이고 박윤선 박사님이 그의 생애 마지막에 있어
서 이 땅에 남긴 가장 큰 공헌이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서 결정한 교회정치와 예배모범을 제외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
소 요리문답을 합신 교단의 교리적 입장으로 받아들이게 한 점이라고 생각한
다. 
그것도 1646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수정 없이 받아들인 장로교회
가 되었다는 것은 세계 교회사에서 보기 드문 일로 이 땅의 교회에게 내린 
r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와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채택 과정에 있어서 예배모범만을 제외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
·소 요리문답, 교회정치, 목사 임직에 관한 교리적 부분과 목사 임직을 위
한 지침서 및 목사고시 등을 모아서 그와 같은 고백들의 근거들이 되는 모
든 성경 구절들이 여백에 인용되어 출판된 1658년의 중요한 출판물이 독일로
부터 복사되어 한국에서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중요한 사건이
다. 
이 출판물이 중요한 것은 성직자들에 의해서 작성된 고백서가 1647년 2월 4
일 이후 최종 두 의회로부터 비준을 받는 과정에서 민감한 구문들(특히 제23
장 4항, 제24장 3항 등)이 수정을 받게 되는데, 그러한 수정들을 받아들이
지 않고 1646년 9월 25일에 제출된 고백서 원안 그대로 출판되었기 때문이
다. 
사실 미국의 경우에도 1728년 처음 채택하고자 하는 안이 장로교 대회에서 
논의되었을 때 1646년 신앙고백서 중 제20장과 제23장에 있는 관원에 관한 
내용과 조항들이 생략되어 최종 채택되었다. 1788년에도 다시 기존의 생략 
외에 제31장의 관원에 관한 조항까지 더 수정해서 채택되었다. 
그런 의미
에서 합신 교단처럼 1646년의 신앙 고백서를 그대로 채택한 교회
는 그리 많지 않다. 1647년 8월 27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6/7년 1
월 출판물 혹은 1647년 5월 출판물)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가장 전통적
인(most orthodox) 고백으로 판단하여 채택하였던 스코틀란드 에딘버러 총회
와, 소수의 연합 개혁장로교회(Associated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와, 독립 혹은 자유 장로교회들(Free Presbyterian Church etc.) 이외에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1660년이래 영국과 스코틀란드에서 장로교회가 지하로 사라진 이후 1688년 
혁명과 함께 1689년 종교의 자유가 허락이 되었을 때, 1690년 스코틀란드 의
회는 1646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개혁교회 교리의 총화와 실체
(the sum and substance of the Doctrine of the Reformed Churches)를 내포
한 것으로 고백하였다. 그러나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계속 분
파들을 야기하여 그 교회는 지금까지 그 고백을 순수하게 지킬 수 없었던 것
이다. 
1646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관원에 관한 고백조차도 무오한 성경과 
정통개혁신학의 신학적 체계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 있었음에도 교회가 전체
적으로 그런 개혁신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조항을 지킬 수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580년대 이후 거의 20년 동안 정통개혁신학이 
성장하여 도르트회의를 기점으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가 작성됨으로써 다시 회복되는 기적이 이루어졌었다. 
그후 개혁교회 안에 더 이상 그와 같은 신학적 회복이 불가능하였다는 점에
서, 그리고 오늘날 그와 같은 성경적 고백이 역사적 개혁 교회 안에서 다시 
산출될 수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후대 교회는 그 고백을 그대
로 받아드려도 기적이 되고 있다. 그런 평가는 물론 역사적 개혁신학의 독특
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성경의 무오성, 구원의 인과적 이해에 있어서 예지보다 예정이 앞선다는 
것, 장로와 감독의 동등한 개념,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선포와 성례, 칼케톤 
신조에 어긋나지 않은 기독론 등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과 함께 종교개혁자
들의 일반 정신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러나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1)자체로 충분한 모든 속성들
에 대한 
고백, 2)만물들과 관련해서 모든 속성들에 있어서 동등한 성부, 성
자, 성령 하나님의 각각 능동적 사역들, 3)에베소서 1장 11절에 따라 그의 
자유로운 의지에만 근원적 원인을 두고 철저히 일반적 작정과 특별한 작정
을 구별하여 만세 전에 아무 것도 고려되지 않고 성부께서 성자에게 맡긴 택
자들의 수와 그 본질적 속성들을 나타내시는 목적 및 그 목적에 대한 수단들
로써 인간 타락, 삼직을 가진 중보자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 그와 연합된 택
자들의 구원의 서정들이 작정되어 같은 뜻의 의논에 따라서 만세 전부터 그 
작정이 집행이 된다는 사실이 어디에서나 고백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정
통개혁신학의 독특성이 회복된 흔적들이다. 
그밖에 4)작정의 불변성과 구별된 뜻의 의논에 따른 역사들로서 필연성, 자
유성, 우연성 사이에 모순이 없다는 것, 5)하나님의 본질적 속성들이 유효
적 원인들로 되어 있는 의논에 따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능동적 허용과 타
락 후 영혼과 육체에 있어서 전적무능력과 전적 부패, 6)후손들에게 죄책의 
전가와 같은 죽음과 부패된 본성의 전달, 7)중생된 자에게도 남아 있는 본성
의 부패. 
8)하나님 
편에서 스스로 낮추신 방식으로써 생명을 약속한 행위언약의 실패
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약속하시는 한 은혜언약 아래 모
든 시대를 통해 택자들에게 전달되는 그리스도 구속사역의 능력과 유효 및 
은택들은 성육신 전이나 후나 동일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신구약 실체의 통일
성). 
9)작정과 구속 및 적용 사이의 확실한 구별, 10)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에 있
어서 한 위격의 통일성 아래 두 본성에 고유한 행위들과 역사들, 11)외적 소
명을 받을 수 없는 다른 모든 택자들의 경우에도 타당할 수 있을 만큼 동일
하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중생, 중생에 이르는 유효적 소명부터 구원의 보
존까지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할 수 있는 능력까지 하나님의 역사. 
12)의식법을 제외한 도덕법으로서 율법의 제3 사용, 13)교회의 표지를 나타
내는 일이나 하나님 나라의 열쇠권을 베드로를 대표하는 한 개인이나 관원, 
본질적 전체(totum essentiale)로서 회중에게 돌리지 않고 치리회 자체
(unitas)로서 복수인 교회직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 14)천국과 지옥으로 가
는 중간기 시대와 몸의 부활 및 마지막 심판 사이에 천년이 없다는 것이 
그 
신학적 특성들이다. 
따라서 그런 신학적 특성들을 가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낸 퓨리탄들
과 그들의 신학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도, 어떤 이가 그것을 그대
로 번역하고 그의 신앙고백으로 삼았다면, 그것을 그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
성으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웨신 안에 있어

지금의 시대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냈던 시기보
다 어렵지 않다. 오직 환경과 상관없이 그런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