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승리자
“진정한 성공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라”
이재헌 목사/ 대구 동흥교회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떤 일에서든지 그 기준이나 평
가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결국 마지막 목표는 성공적인 결론일 것이다.
성공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 많아
이처럼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열망에서 목회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본
다. 그러기에 소위 성공적인 목회 혹은 성공적인 목회자라는 말을 듣기 좋아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으로부터(욥 1:8) 인정을 받은 욥
처럼 동일한 인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면 이는 참으로 목회자에게는 최
고의 영광이 아닐까?
최근에 발표된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만여 개의 교회가
있으나 그 중 절반 이상이 청장년 교인 수 30명 미만의 미조직 교회이며, 또
한 매일 같이 새로이 설립하여 시작되는 교회가 2천 5백여 교회인 반면 폐쇄
하여 없어지는 교회의 수가 약 3천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믿기 어려
운 사실 앞에서 과연 성공적인 목회가 어떤 것인가를 겸허히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대로 과연 무엇이 성공인가 하는 기준에 대해
서는 좀 더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두 눈 부릅
뜨고 바라보고서 스트라이크와 볼을 선언하는 야구 경기의 주심처럼 누군가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명확히 구분해 준다면 때로는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모세의 삶을 생각해 본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에 모세만한 큰 인물이 또
있을까?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고통과 압제에서 자유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며 대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과연 그
가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모세의 인생은 출생부터가 순탄하지 않았다. 남의 눈을 피해 태어났고, 나
일 강에 버림받은 아이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로의 공주의 손에 자라게
되었지만, 유모가 자기의 생모라는 사실도 모르고 성장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청년기에 이른 모세는 일시적인 민족 감정으로 살인을 범하고서 도망자가 되
어 긴
방랑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는 낯설고 물 설은 광야의 처가에서 40년
을 양을 치며 하루 하루를 깊은 좌절 가운데 보낸 모세의 삶을 과연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모세의 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
다. 이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설령 어떤 실패와 좌절이 있었더라도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만 했다면 그의 삶은 성공한 삶이라 결론지을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셨
다.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죽음을 맞는 모세의 모습은 보
면 분명 실패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에도 모세를 실패자로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주
심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은 성공적인 인생으로 평가하고
있다(히 11:26).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만큼 이룩했는가? 어느 지위에 얼마만큼 올랐는
가? 무엇을 얼마만큼 가졌는가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
들이 적어도 목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목양의 사역은 그 성과가 아니라 그 목회의
과정에서 나타
나는 목회적 가치관과 목회자 자신의 신앙적 소신과 자세를 보고서 내려 주
시는 하나님의 평가가 아닐까?
한 목회자가 아무리 엄청난 교회를 이루며 세상에서 인정받는 목회적 성공
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그 내면을 아시는 하나님이 어떤 판단으로 손을 들어
주실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목양의 사역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성공의 기준이
된다고 본다. 비록 폐쇄되는 교회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목회자라 할지라
도 그가 주어진 목양의 일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다면 그는 분명 성공적
인 목회자일 것이다.
오로지 부끄럼 없이 최선 다해야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으신 예수님의 모습이나 가나안 땅을 바라보
며 이 땅에서의 삶을 정리한 모세의 삶은 세상이 보기에는 실패한 삶이었을
지라도 오히려 거룩한 뜻을 이룬 진정한 성공적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