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인_김승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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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인

김승식 목사·인천영광교회

며칠 전 사랑하던 성도 한 분이 곁을 떠나갔다. 목사에게 있어서 성도 한 사
람, 한 사람은 참으로 의미 깊은 존재이다. 어느 형제인들 그렇게 수시로 만
나겠는가? 어느 이웃이 그토록 얼굴 표정만 봐도 마음을 교감할 수 있고, 어
느 친구와 그렇게 고락을 나누겠는가? 
형님과 누님이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몇 달에 한번 만나기도 
힘들다. 하지만 성도들과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만나는 사람이 많다. 만남뿐
인가? 교회에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애타하고, 함께 힘
을 모으고, 물질을 모으지 않던가? 또한 형제들과 친척들과도 함께 식사할 
기회가 적은데 성도들과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식사를 한다. 이
런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목사의 분신같은 성도들

그래서 교우들 중에는 때론 형제애보다 더 진한 애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
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우들 중에서 원치 않은 죽음을 맞아 공동체 곁을 
떠나갈 때는 가슴
이 메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성도들이 많은 교회라면 자
못 담담하게 대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성도를 돌보는 
목회자로서는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날, 성도들 중 한두 분은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어서 비통의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몰라서일까, 하
늘나라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였을까? 그게 아니었다. 
이번에도 권사님 한 분이 암으로 투병하시다 소천하셨는데 의도적으로 올인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올인했을 때 겪는 데미지가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두
어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이다. 누가 생각하기를 “목사님은 왜 우리 가족, 
우리 형제가 이렇게 죽어 가는데 차별을 하시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
을 것이다. 지난날의 내 태도를 안다면 말이다. 
이미 십 여 년도 더 지난 일들이기는 하나 한 때 암에 걸린 교우를 살려보려
고 나와 온 성도들이 올인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한 주
간의 특별기도회가 두 주간, 세 주간으로 이어졌고 금식기도도 했다. 교인
들 대부분도 이 일에 동참해 맹렬히 기도했다. 어느 형제는 한 달 월급을 고
스란히 
바쳐가며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원했다.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교우의 병이 치유받아야겠다는 맹목적 기도가 아니었
다.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연들이 있는, 그렇기 까닭에 반드시 하
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는 대명제가 걸린 기도였다. 정말 하나님의 기
적적인 역사가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고 기도한 보람도 없이 기적의 역사는 비켜갔다. 그로 말
미암아 겪는 허탈감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유증이 한 달, 
두 달, 아니 일 년도 더 갔다. “놀라운 역사! 기적의 역사!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단어는 내 입에서 사라졌다. 
그 후로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 올인하기가 두려워진 나는 그냥 적당한 선에
서 멈추는 모범적(?)인 기도를 유지했다. 어쩌면 양떼를 위해 올인할 때가 
진정한 목회자의 자세가 아닐까? 지금 나는 너무 약아 빠지고 나약해진 것
은 아닐까?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전도사 시절 생애 첫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가 있었다. 얼마나 열정을 쏟아 
부었던지 집회 마치고 난 다음 주간 내내 앓았다. 입술은 온통 부르튼 채 몸
살에 걸려 신음했다. 그건 사실 미숙한 아마추
어 행동이었다. 일 년 내내 집
회 다니는 부흥강사는 한 집회에 올인하지 않는다. 긴 페넌트 레이스를 생각
하며 던지는 프로야구 투수와 같다. 
투수가 한 경기에 목숨을 걸면 결국 그 경기는 이길지 모르나 만약 그로 인
해 어깨가 고장나면 선수생명 자체에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
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난 날 환자를 위해 올인했
던 것은 어리석은 아마추어의 행동일 것이다. 

주님께서 부르신 뜻 받들기로

그러나 그것으로 100%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하
지 않는 나 자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네 가족이 
그렇게 죽어 간다고 해도 그 정도 기도에서 멈출 것이냐?” 한다면 답변이 
궁해질 게 틀림없다. 
이번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신 권사님. 이 분을 지켜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늘 아파오던 그런 분이셨다. 충성을 하고 싶으나 물질은 넉넉하지 못
했고, 마음껏 섬기고 싶으나 건강이 따라주지 못해 애쓰시던 분, 그러나 실
은 숨은 봉사자였다. 
말없이 충성하시던 분, 남들이 싫어하는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시던 분이셨
다. 평
생에 걸쳐 남들처럼 호사나 호강의 근처도 못 가보시고 고생만 하시더
니 끝내 몇 가지 암으로 생을 마치셨다. 주님께서 그를 고통 많은 세상에 
더 두기보다는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먼저 부르셨음을 믿는다.
그렇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 태도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를 위해 
하루의 금식기도도 없었고 밤을 지새운 기도도 한 번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
에는 그저 담담히 그의 생명을 주님 뜻에 맡기고 기도할 뿐이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애써 울지 않고자 했다. 눈물 많은 내가 말이다.